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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이상헌 저)

더연 / 문화살롱 / 2015.09.08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jpg




한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이 화장실을 과도하게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본격 조사에 착수한다. 전 직원에게 화장실 출입 카드를 나눠주고 출입 기록을 분석해보니, 직원 19명이 하루에 6분 이상을 화장실에서 '허비'했다는 결론을 냈다. 이에 "하루에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는 직원에게 하루 1천 원(1달러)의 격려 수당을 주겠노라"고 하니 노동조합은 한 달 2만 원(20달러) 추가 수입을 위해 이같은 회사의 제안을 수용했다.


1960-70년대 구로공단의 어느 봉제공장 이야기일까? 아니다. 2014년 7월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한 수도꼭지 생산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사무차장 정책특보인 이상헌은 저서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에서 이와 같은 '믿기 어려운' 노동 이야기를 전해준다. 경제학자답게 그는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내놓은 평균 화장실 이용 통계를 인용하며 "오줌보 관리가 사실은 노동생산성을 저하시킨다"고 일갈한다.


그의 저서에는 해고가 밥먹듯 이뤄지는 영국에서조차 종교적신념을 이유로 샴페인 계산을 거부한 마트 직원이 회사에게 사과를 받고, 24시간 운영하는 주유소 내 매점이라도 필수 서비스가 아닌 이상 24시간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한 스위스 사례 등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곳곳에 박혀 있다.


반면, 마트의 아줌마 계산원들에게 의자를 허용하지 않고, 배달사원들에게 승강기 사용을 허하지 않으며, 비행기 승무원이 엎지른 물 한잔에 비분강개하는 게 상식인 양 통하는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독자들은 '도대체 누가 이러냐'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고 싶어진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두고 저자는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장시간 서 있는 노동자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느끼는 소비자, 이런 상황을 활용하는 기업에겐 이런 존중감이 없다"고 지적한다. 노동자성과 소비자성이 한 개인 안에서 충돌할 때 소비자성만 비대해진 결과다.


승강기를 이용하는 우유배달원에게 '전기세 내고 사용하는 거냐'며 추궁한 강남의 한 아파트 입주자에게 배달원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는 일을 두고, 저자는 "죄송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지우고 그 위에 중지 손가락을 그려 넣고 싶다"고 발칙한 제안도 한다. 최근 승강기 사용을 금하는 아파트에 대해 배달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택배기사들의 이야기를 그가 들었다면 므흣(!)한 미소를 지었을 것 같다.


이상헌은 국내 '마르크스주의' 개척자 故김수행 교수의 제자다. 이를 꾹꾹 눌러 강조라도 하듯, 그는 "그들의 자본주의를 그들의 손에서 가져올 때"라고 말한다. 20여년 전 배를 탔던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분개하고 혈기만 넘쳤을 뿐, 싸울 방법은 몰랐던'그가 아닌, 이제는 십팔기(十八技)를 터득한 그가 어떻게 우리의 손으로 자본주의를 넘겨받을 궁리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다.




이상헌은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정책특보.jpg



이상헌

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옥스포드대학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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