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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제는 더좋은민주주의다

더연 / 칼럼 / 2017.03.14


이제는 더좋은민주주의다



더연 정치팀



탄핵은 인용되었고 박근혜는 물러났다. 국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 부패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을 뛰어넘는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쾌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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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선고문을 읽는 이정희 前헌법재판소 권한대행(헌법재판소 선고동영상 캡쳐)


그런데 탄핵인용은 촛불혁명의 종착역인가? 이것으로 국민이 원했던 변화와 개혁이 완성된 것이고 우리 시대의 과제가 해결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제 막 당장 눈에 보이는 환부의 일부만을 도려냈을 뿐이다. 박근혜와 그 측근 세력 일부에 대한 인적 청산만 이루어졌을 뿐 국정농단 사태를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그대로이다. 대내외적으로 위기 또한 산재해 있다. 주력산업의 위기, 불평등의 심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세대 갈등, 가계부채, 저출산, 노인빈곤, 북핵 문제, 사드문제로 인한 외교적 갈등 등 우리 앞에 놓인 위기와 시대적 과제들은 너무나 많다.


탄핵이 인용된 지금 우리는 이제 어떤 나라를 만들어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지를 고민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추동된 변화에 대한 열망과 낡은 체제에 대한 분노를 동력 삼아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새로운 체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는 국정농단 사태와 현재의 위기들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내는 체제여야 한다.


현재의 위기는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차원에 머물렀을 뿐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원리로서 작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대화하고 소통해서 박근혜의 무능과 비민주적 사고방식이 드러났다면 과연 박근혜가 선출되었을까? 삼권분립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여 각 기관이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국정농단세력의 전횡이 가능했을까? 국가가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성실히 이행했다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사태가 발생했을까?


답은 더좋은민주주의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사회원리로 작동하여 참여와 경쟁, 대화와 타협, 설득과 조정,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짐으로써 자정작용이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더좋은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첫째 정당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정당은 국민과 제도권을 연결해주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 기관이다.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 보스를 위해 움직이는 사병조직이 아닌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정권획득만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적 구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특정 보스의 이익이나 선거 전략에 따라 이합집산하지 않고 지속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의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러 사회세력이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경쟁하며, 이를 통해 조정과정을 거침으로써 합의에 이르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이고 호혜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생략된 채 다수결로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수의 전제일 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우리 사회는 이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우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결코 대화와 타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 지역의 이해를 맹종하고 다른 지역을 적대시하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은 빨갱이 혹은 수구꼴통이고 자신의 길만이 구국 혹은 진보의 길이라는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언제든 내 것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자세로 대화해야 한다. 자기 진영의 논리만이 진리라는 태도를 버리고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서로가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기억하고,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채 서로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좋은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소연정이건 대연정이건 협치와 연정은 이 시기 대한민국 정치가 피해 갈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들이 헌법적 취지에 맞게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의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으로서 다양한 사회세력의 견해를 반영하여 입법 기능을 수행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를 적절히 견제해야 한다. 행정부는 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법률적 근거에 따라 공익을 위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사법부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림 없이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넷째, 시민의 감시와 적극적 참여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변화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요인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배이다. 즉, 민주주의의 주체는 시민이다. 기본적으로 시민의 참여 없이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체제가 민주주의인 것이다. 시민이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참여해서 정치인들이 허튼 행동을 할 경우 언제든지 선거를 통해 해당 정치세력을 심판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책임성이 확보되어 정치인들이 앞서 이야기한 민주적 가치들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와 같은 논의를 두고 교과서에나 나오는 뻔한 얘기이며, 뜬구름 잡는 소리이자,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교과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더좋은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으로 들리는 것은 단지 우리가 이것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좋은민주주의는 전혀 비현실적인 개념이 아니며, 이미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왜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인가? 일제의 총칼도, 전쟁의 폐허도, 군부정권의 군홧발도 극복한 우리다. 더좋은민주주의의 실현은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버릴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목숨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대화를 지속해나갈 인내, 상대에 대한 존중과 타협을 위한 약간의 양보만을 요구할 뿐이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참고할만한 두 가지의 역사적 사례가 있다. 중국의 태평천국운동과 영국의 명예혁명이다. 태평천국운동은 청조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하여 대륙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지만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채 구체제를 답습했고, 이로 인해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려갔다. 여기에 더해 외세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여 이내 패퇴하게 된다. 이에 반해 영국의 명예혁명은 혁명 이후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세워 새로운 체제를 창출해냈고, 이후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카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촛불 혁명을 이룩한 우리는 새로운 체제를 창출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진일보할 것인지, 그렇지 못한 채 산재한 위기에 파묻혀 침체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리고 당장 다가올 대선에서 우리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선택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며, 책임 또한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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