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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리 없는 아우성, 역사 교과서 논쟁사

더연 / 칼럼 / 2016.12.27

소리 없는 아우성, 역사 교과서 논쟁사



더연 교육팀



역사 교과서 논란은 멀리 보면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까지 올라가지만, 단기적으로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참여정부의 출범은 보수 세력에게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이러한 감정은 전향한 운동권 인사들과 학계를 중심으로 뉴라이트라는 우파 조직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뉴라이트의 출범, 역사전쟁의 시작


뉴라이트가 주목한 것은 교과서였다. 역사 논쟁을 일으켜 민주화 운동을 좌우대립으로 치환하기 위해 역사 교과서 좌편향 시비를 걸고 나왔다. 기존의 선생님들과 역사교육계가 좌편향되었기 때문에 우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과서를 써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논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 내부의 토론 과정이 아니라, 외부의 정치 운동 단체의 정치적 문제제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시작했으니 논란 자체가 학술적, 교육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오염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정권을 손에 쥐고 있지 못하였으니 처음에 시도한 것은 뉴라이트판 역사책을 발간하는 일이었다.



대안교과서.png




2006년에 ‘대안 교과서’라는 형태로 발표된 뉴라이트판 역사책은 시안 공개와 동시에 4월혁명 단체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으며 심포지엄 현장이 난장판이 되는 홍역을 겪었다. 2016년에 발생한 국정교과서 사태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예상치 못했던 교육감 직선제의 영향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처음 착수한 일은 눈엣가시 같은 검정교과서를 쳐내는 일이었다.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특정 역사교과서 채택을 정권의 힘으로 방해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정권의 힘을 앞세운 교육계 장악은 2007년 교육감 직선제로 인하여 상당부분 무력화된 것이다. 교육감이 직선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적 발언권이 세졌고, 그렇게 등장한 진보교육감들이 정권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는 중앙집권에서 분권으로 서서히 이행하고 있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권력 관계의 변화 과정이 교과서 압력에 대한 브레이크로 작용한 것이다.


보수의 입맛에 맞는 검정 역사교과서 개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 세력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교과서 개발에 착수하였다. 교학사에서 발행한 교과서가 바로 그 책이었다. 정권의 힘을 배경으로 대대적 채택 운동을 벌였지만, 현장의 역사 교사들이 교학사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닌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선택함으로써 이 역사 전쟁도 보수 세력 입장에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교학사 교과서.png



2006년 대안교과서 발행 이후부터 계속된 역사교과서 전쟁에서 보수 정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역사 교과서를 쓰는 학계 및 현장의 역사 교사들의 역사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한 것을 두고 보수세력은 현장 교사의 이념성을 비판하였지만, 실제로 교과서의 질이 다른 출판사의 것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매우 큰 요인이었다고 역사 교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정 교과서 불채택 압력이 실패로 돌아간데 이어서, 보수세력은 야심차게 만든 검정 역사교과서마저 현장에서 외면을 당하는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마지막 완력 카드, 국정 교과서


실력과 지지가 없을 때 완력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정치 세력이 쓸 수 있는 카드 중에 가장 하수에 속한다. 박근혜 정권은 가장 하수인 수를 두기 시작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그것이었다. 아버지의 역사를 미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빚은 정권의 역사적인 악수(惡手)였다.



국정교과서.png



역사관을 정권이 장악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발상은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역사학자들이 이에 동의할 리 없고 현장 교사들이 동참할 리 없었다.


집필진 구인난이 벌어지면서 국정교과서의 품질에 대한 우려가 역사 교사들로부터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역사교과서에 대한 마지막 카드였던 국정화는 의외의 역사적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른바 JTBC 태블릿 PC보도로 촉발된 최순실 사태였다. 2016년 겨울은 촛불의 바다에 휩싸였고, 역사의 물줄기는 박근혜 정권을 탄핵으로 몰고 갔다.


정권의 힘으로 추진한 정책이었으니 힘이 사라지면 교과서도 없어질 운명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준식 교육부총리가 국정교과서 채택을 1년 연기한다는 발표는 폐기하겠다는 발언과 다름없는 정치적 수사이다.


지난 10년 동안 역사 교과서의 역사가 바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로써 역사를 장악하겠다는 정권의 욕망은 끝이 난 것일까?


2004년 뉴라이트가 출범할 때 보수 세력이 잘못된 전제에서 역사 교과서를 바라본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참여정부에서 채택되었던 역사 교과서는 실은 국민의 정부에서 집필되었던 교과서가 출간되었던 것이고, 그 집필 기준은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이전 김영삼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특정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색안경으로 현실을 재단한 것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수립된 정권은 교과서를 학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의 영역으로 존중해주었고, 이런 흐름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계승하였다. 이런 역사적 흐름을 역주행한 것이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큰 패착이었다. 정권의 힘으로 맘대로 할 수 있지도 않고 그렇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10년 간의 홍역을 앓고서야 교훈을 얻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하고 현재의 발전상을 자부하고 있다면, 이 체제가 만든 전문성과 민주주의적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나만 옳다’는 사고방식으로 복잡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도 없고, 특히 역사교육 같은 전문 분야를 정권의 힘으로 어찌해보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버려야 한다.


지난 10년 간 역사 교과서의 역사가 바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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