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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위기의 남북관계, 퇴로인가 진로인가 -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강연

더연 / 자료실 / 2013.05.08 121.131.233.140

위기의 남북관계, 퇴로인가 진로인가

- 5월 6일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강연 열려 -

 


지난 5월 6일 늦은 7시, 노무현재단 큰강의실에서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주최 특별초청강연 “위기의 남북관계, 퇴로인가 진로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님 강연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경색되어가는 남북관계에 대한 안타까운 맘을 전하며 시작된 장관님의 강연은 개성공단 문제, 핵위기의 역사, 외교, 군사, 통일, 한반도-아시아 평화프로세스 까지 남북관계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의 중심, 아시아 최대의 산업단지라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 출발했던 남북평화의 상징인데, 어렵게 이뤄낸 이 성과를 근로자 철수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무너뜨린데 대한 우려를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북-미간의 엇갈린 선택 속에서 고조되었던 핵 위기의 반복된 역사는 분단의 불행한 역사이며 민족의 큰 아픔 이지만 그 속에서 꾸었던 평화와 통일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며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강연 전문에 담겨 있습니다. 회원님들께 정독을 권합니다.

 

위기의 남북관계, 퇴로인가 진로인가

-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초청강연. 2013년 5월 6일, 노무현재단 큰강의실 -

 

 ★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강연영상 

 

 강연시간이 길어 로딩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 인사말 -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

 

네, 반갑습니다. 저도 오늘 노무현재단에 처음 왔는데 사실 제가 그래도 노무현재단 이사입니다(웃음) 오늘 사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와서 사무실을 보고 아주 옛날보다 참 좋아졌네요. 앞으로 이 시설들 잘 활용하셔서 좋은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참 답답하죠? 남북관계. 걱정입니다. 저도 정말 아주 너무 속이 상하고 가슴 아프고 어떻게 이런 일을 만들어 놓을 수 있나. 아, 정말 해도 해도 이렇게 할 수 있나 싶어서 오늘 PPT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이 자료는 보시면서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 최후의 7인 귀환 -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는 최악의 결정으로 남을 것이다

 

지난 5월 3일 개성공단에서 흔히 얘기하는 우리 최후의 7인이 개성공단을 나오는 모습입니다. 개성공단이 폐쇄상태에 접어들었죠. 전기를 보낼 수가 없대요. 기술적으로. 왜냐하면 곳곳에 한전직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전기를 받아서 갈수 있는 처리가 안 됩니다. 오늘 보도되기로는 최소한도의 전기를 보내겠다. 나는 그것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없는대요. 북한직원이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한전 직원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건데 지금 전기를 보내면 당장 문산이 터집니다. 문산에 있는 송전소에 문제가 생깁니다. 참 이것도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솔직하지 못한 거죠. 참 이 월스트리트 저널, 미국에. 2013년 4월 10일 사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북한정권 유지에 악용되는 개성공단 폐지를 주장하면서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조업중단 조치는 위기를 조성해서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박이라고 하면서 박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영원히 폐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공단에 매년 지급 되는 임금은 9천만 달러에 달하고 한국 기업들은 공단에 8억 4천 5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빈곤한 절대주의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낸 것이다. 이게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9일 박대통령이 북한의 개성공단 조업 잠정중단 사태에 대해 북한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런 발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공단에 있는 한국 근로자들을 남한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아마 이 충고를 받아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두고두고 역사에 박근혜대통령의 정말 최악의 결정이 개성공단에 대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전 믿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절대로요. 개성공단에 있는 이 사람들이 다 숙련공이기 때문에 동북3성에 있는 중국 공장에 당장에라도 취업시킬 수가 있고, 취업시키는 경우 개성공단에서 받는 임금의 세배 이상의 임금을 받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 생산되는 것이 작년경우에 약 4억 6천만 불이 됩니다. 이따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미국이 이런 얘기를 할까? 미국언론은 왜 이렇게 나올까? 불난데 물은 못 끼얹을지언정, 불난데 휘발유를 붓는 이런 얘기를 왜 할까? 미리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을 드리죠.

 

 

• 개성공단의 시작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과감한 결정

 

개성공단이 만들어진 것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정주영 회장이 98년 6월과 10월 소떼 1001마리를 자기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 전달을 합니다. 돈으로 따지면 별거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17살 때 남하를 할 때 아버지 집에 있던 소한마리를 판돈 70원을 들고 나와서 이렇게 자기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 빚을 갚는 마음에 한 마리의 원금과 천 마리의 이자 1001마리를 북에 갚은 거죠. 그런데 이런 정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 맘이 움직인 것이 아닌가. 좋은 교훈입니다. 그래서 사실 북쪽에서 이에 대한 보답을 하는데 소떼가 이 자동차에 실려서 북으로 가고 있습니다. 참 개성이란 곳이 가까운 뎁니다. 서울에서 불과 얼마 안 되잖아요? 일산, 김포, 강화, 파주, 그 위가 개풍군이고 개성이 바로 거기 빨간 이 가운데 밑에 부분이 개성이고요. 조금 흐릿하게 되어 있는 게 DMZ 선이고요. 이렇게 보면 개성이 정말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이죠. 이 개성지역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업지역으로 내놓았다는 것은 놀라운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서울서부터 불과 60km입니다. 이 지역에 본래 수도권을 단 30분 내에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는 포병 화력군단이 여기에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30분 내에 수도권을 제압할 수 있는 그런 포병화력입니다. 이 화력을 전부 북쪽으로 다 몰아내고 공업지구를 만든다고 하는 건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통일부 사람들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성을 공업지구로 내놓겠다를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보십쇼, 이런 포병부대가 서울을 공격할 수 있는 부대가 불과 60km 북방에 이렇게 상주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을 물리친다고 하는 것.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제 2차 정상회담 할 때 2007년 10월 3일이죠. 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한줄 아느냐. 군대를 다 밀어내고 2천 만평을 내놓을 때는 굉장한 용기를 내고 한 건데 이제까지 2천 만평 가운데 10분의 1을, 아니 20분의 1인 100만평 그중에서도 공장부지는 40%인 40만평만을 공장부지로 쓰고 있는 것이 말이 되냐. 우리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 위대한 구상 개성공단 - 한반도 평화의 센터, 아시아 최대의 산업단지를 꿈꾸다

 

이게 처음 계획입니다. 보라색으로 되어 있는 밑에 부분이 350만평 1단계 100만평 2단계 250만평. 350만평이 1단계 사업 이었고요, 그 다음 그 옆에 확장구역 그 위에 1차 확장구역 950만평 그래서 이 밑에 있는 350만평과 그 위에 있는 것이 합쳐서 한 1300만평 되는 거죠. 그래서 2천 만평 입니다. 2천만평 규모의 굉장한 공업단지 구상을 한 거죠. 그래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계획서를 가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이걸 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주 마음에 차서 원안대로 갑시다. 해서 원안대로 추진을 하게 된 것이었죠. 그런데 이 1단계 350만평 중 100만평만 기반시설 조성이 되어 있고 빨리 뭔가 서두르자. 그래가지고 2007년 12월 1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된 그 다음날 북측 사람들을 설득해가지고 250만평에 대한 지질조사와 측량공사 착공식을 저희가 했습니다. 사실 그해 12월에 마감을 지었죠. 250만평을 개발했었으면, 우리 중소기업들이 얼마만큼 경쟁력 있게 여기서 생산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난 이거 하나로 새로운 직장 창출도 10만개 이상을 만들었을 겁니다. 정말 이건 안 한걸 납득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2003년 6월 30일 개성공업지구건설 착공식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허허벌판에 정말 큰 꿈을 가지고 시작한 거죠. 개성공단은 작년기준으로 53448명의 북측근로자, 남측에는 774명, 이때까지의 누적생산량이 19억 7598만 불 약 한 19억 8천만 불 정도 되는 거죠. 근데 이 실제 계산이요, 약 20억불이라고 치고요. 여기에 숨은 숫자가 있습니다. 이 계산이 순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원부자재 값, 개성공단의 부지 원가, 공장운영가 등 그 원가만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생산을 한다고 할 때 사실상 여러 가지를 감안한다면 여기에 세배를 곱해야 합니다. 20억불이 아니라 세배 하면 얼마에요, 60억불이 되는 거죠. 그럼 60억불인데 1년에 대략 지금 여기 있는 거에 세배정도하면 5억불에서 15억불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5억불 가운데 인건비 들어가는 게 1억불이 안 되는 겁니다. 얼마나 싼 겁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죠. 서울 근교에서 어떻게 한 달에 12만원, 10만 원짜리의 일자리, 일할 인력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학 졸업생들을. 대부분이 대학 졸업생들입니다. 참 이걸 생각해 보면 은요. 120불을 주는데 1주일에 61시간을 일하는 겁니다. 남측에 비하면 엄청나게 일을 더 많이 하는 거죠. 근데 어떤 사람들을 이게 임금착취가 아니냐. 너무한다. 이런 주장들도 하지만 개성공단의 초창기 일이기 때문에, 업체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이고, 국가로써도 처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급적 낮은 단계부터 했었고, 이 논의가 이루어질 때가 2003년, 2004년 때입니다. 훨씬 이전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임금의 현실화라는 건 좀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죠. 이것이 개성공단의 작년 말 현재의 현황입니다. 1단계 100만평 가운데 지금 활용하고 있는 부분은 40%, 40만평. 123개 기업체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여기에 협력업체 수를 따지면 전문가의 판단을 보면 5800개의 업체가 들어가 있는 거죠. 북측노동자가 5만 4천명인데 여기에 연관된 남측 근로자가 15만명, 세배 정도되는 걸 보면 짐작이 가는 겁니다. 이걸 뒤집으면서 얼마만큼의 큰 손해가 나는지 짐작할 수가 있죠. 연간 북한에 지급하는 임금 총액이 8천 6백만 달러, 6년간 6억불, 아까 얘기한 60억 불에 10분의 1도 안되는 그런 정도의 것이죠. 출퇴근도 엄청나게 힘듭니다. 4만 9천명이 출퇴근하는데 263대의 버스가 하루 1000회 왕복을 합니다. 버스도 작습니다. 콩나물처럼 싣고 다닙니다. 하도 위험해서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통근열차를 운행해 봅시다. 했는데 거절했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상이 아니라 묻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듣고 말았죠. 이걸 보면 그래도 한 2천명 정도가 도보나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데 이게 참 대단한 일입니다. 본래 개성공단은 처음에 계획한 것이 35만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거대한 산업도시로 구상을 했구요. 최대 정몽헌 회장의 구상으로는 최대 4천만평 내지 최대 1억평 정도의 아시아 최대의 산업도시를 만든다 하는게 구상이었습니다. 35만의 근로자를 어디서 조달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조달하겠습니까. 사실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음속에는 6. 15남북 공동선언도 했고, 남북간의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군비축소다. 군축이 되면 충분히 조달 할 수 있는 인력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정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이 개성을 군사적 중심지와 기지가 아니라 평화의 기지,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를 만드는 마치 평화의 센터, 그런 원동력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던 거죠.

 

 

• 왜곡된 시각이 개성공단과 평화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봅니까. 이거를 천박한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거죠. 노동력 싸게 해서 그저 우리의 기업들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판단을 합니다. 심지어 북한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벌어들이는 돈을, 아까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오는 얘기처럼, 갈취하기 위해서, 북한이 그 돈을 뺏어갈려고 이 짓 하는거 아니냐 이렇게 언론도 그렇고 심지어 상당한 정부의 고위층들도 그런 얘기를 하니, 북한 사람들은 가슴이 터지지 않겠습니까. 근데 현대전에서요. 초기 30분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군대를 전부 북쪽으로 밀어냄으로써 서울을 공격하는데 30분의 시간이 더 걸리게 생긴 겁니다. 이건 서울의 안보에 그 어떤 걸로도 대신 할 수 없는 플러스 팩트입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김관진 국방장관이 얘기하기를 개성에 인질사태가 일어나면 우리가 군사작전을 해서 구출하겠다. 거긴 이북 땅입니다. 이북 땅에 어떻게 군사작전을 하겠다는 말을 장관이라는 작자가 정신 나간 사람이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이. 난 정말로 개성공단이 어떤 공간인데 왜 국방장관이 나섭니까 나서기를. 뒤죽박죽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통일부얘기 다르고 국방부 얘기 다르고 청와대 아침얘기 다르고 저녁 얘기 다르고, 총리얘기 다르고 대통령 얘기 다르고 이러다 보니 이게 무너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 책임을 물어야 됩니다. 힘이 없는 게 한입니다.

 

 

• 불행한 분단의 역사 - 우리는 정전협정의 서명 자격조차 없었다.

 

우리가 사실은 분단이 가장 뼈아픈 일이죠 금년이 정전협정을 맺은 지 60년 정전협정 맺은 것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의 조인식을 지금 판문점에 있는 허름한 임시 막사에서 하고 있는 거죠. 미국의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중국의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그리고 북한 인민군 사령관 김일성, 이 세 사람이 서명을 합니다. 우리는 왜 서명을 못했냐. 첫째로 우리는 군사작전통제권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겼기 때문에. 우리 대통령은 서명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러니까 대통령이 자존심이 있어서 우리는 북진 통일한다, 절대 정전협정 못한다. 뭐 그렇게 내질러가지고 결국 서명을 못한 셈이죠. 실제로는 자격이 없습니다. 불행한 역사죠.

 

 

• 김정은 시대의 도래, 그러나 유훈통지는 유효하다

 

자, 지금 상황이 바뀌어졌죠. 김정은 시대가 왔습니다. 젊은 지도자입니다. 사람들은 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김정은은 한 개인이 아닙니다. 북한이란 나라는 김일성의 나랍니다. 여전히 김일성 주석이 죽었지만 살아서 통치를 하고 있는 나라고 그 시스템과 매커니즘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는 것이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김일성, 김정일 두 사람의 유훈통치 속에서 어쩌면 김정은은 마스코트처럼 앞에 나와 서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걸 넘어서서 젊은 김정은이 가지고 있는 어떤 패기와 결정들이 훨씬 더 우리에게는 무서운 도전이 될 수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이렇게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정전협정 백지화, 한반도 비핵화 폐기, 6자회담 무효, 9. 19 선언 백지화, 이런 걸 거침없이 쏟아내는 걸 보면 새로운 판 짜자 이제까지 20년 해온거 다 실패한 거 아니냐. 우린 20년 하려 그랬는데 결국 얻은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북한의 판단인거죠.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못했고, 그 원했던 경수로 신포에 짓던 200만Kw 전력생산 할 수 있는 경수로도 얻질 못했고, 더 나아가서 이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면서까지 냉각탑 파괴하고 다 불능화 시키면서 까지 자기들은 할 만큼 했는데 얻어진 건 아무것도 없고. 여전히 미국의 제재와 압박은 1950년대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그 뭐가 얻어진거냐. 북의 판단입니다. 된 게 없잖습니까. 아무것도.

 

 

• 남북한 병사의 사진 - 냉전구도의 한 단면

 

김정은 당 제1서기가 연평도 포격했던 그 진지를 방문하면서 남북대결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죠. 옆에 있는 북한 병사의 아주 앳된, 무표정한 모습과 한번 비교를 해보십쇼. 참 병사가 너무 천진난만해 보이죠. 참 이사진이 아주 재밌었습니다.

 

이건 우리쪽 병사의 모습입니다. 역시 젊은 병사지만, 우리 병사에겐 오히려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의 적을 섬멸하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습니까? 냉전구도의 한 단면입니다. 앞에 있었던 앳된 북한 병사와 우리 병사의 모습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 군 참모총장 출신 전성시대 - 안보와 통일의 비대칭

 

위대한 김관진 국방장관의 모습입니다.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 국정원장, 국방장관 모두가 참모총장 동기동창 들입니다. 동기생은 아니고 선후배들이죠. 이렇게 군 최고 실세들이 요직에 들어앉은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 안보회의를 한다고 해도 군 참모총장 출신들이 대세입니다. 나이 60이상씩 먹은 사람들이구요. 그러니 이게 회의가 되겠어요. 통일부장관 50대 약관에 학자를 하다가 장관이 되었고, 외교부장관 외교부 관료로 쭉 성장해서 지금 이제 차관하다가 장관되신 그런 분이고. 그러니까 이게 정말 비대칭 안보회의가 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참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군인의 안보는 역시 군인의 안보입니다. 지금 이 긴장관계가 오게 된 것도 역시 우리가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거겠죠. 이걸 어떻게 평화적 관점에서 통일의 관점에서 보느냐. 사뭇 다르지 않겠습니까. 난 이 모습을 보면서 참 어려운 겁니다. 아니 개성공단 얘기를 통일부가 얘기해야지 국방장관이 나서서 얘기를 합니까. 그건 말이 안 되는거 아니겠어요. 아까 제가 얘기를 좀 안했는데 최후의 7인 넘어올 때도 가운데 선 사람이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이고 관리공단의 위원장입니다. 근데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란 이 조직은 북한의 개성지구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북한법인입니다. 북한법인에 우리 사람이 가서 임용 되어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들은 일을 전체적으로 잘 모르니까 우리에게 위임해 준 거죠. 명백히 얘기하면 북한의 직원들입니다. 그 사람들 사실 우리가 넘어와 이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잖아요. 도리가 아니죠. 우리 사람도 우리 사람이지만 북한 회사에 임용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북한 법인에. 그런데 다 나와 이랬으니. 대통령까지.

 

 

• 남북통신선의 전면 단절, 대규모 한미 군사 훈련 - 이어지는 악재

 

남북통신선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있는 동해지구, 판문점 채널, 그 다음에 군 통신선, 서해지구, 마지막으로 개성공단 관리 위원회 채널 여기까지 다 끊어진 거죠. 이렇게 남북간의 대화와 소통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분단 이래 지금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죠. 참 안타깝습니다.

 

자, 여기에 더 한층 어려운 것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키 리졸브 / 포 이글 군사훈련이 막강한 군사훈련으로 이번에 이루어진 거죠. 이것은 본래 1976년 팀 스피릿 훈련이 굉장히 진행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이 군사훈련의 목적은 한반도에 일단 급변사태가 벌어질 때 다시 말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든지 북한에 내전이 일어났다든가 전선에 전쟁이 발생했다든가, 이런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핵전쟁을 하기 위한 연습으로써의 팀 스피릿 훈련이었습니다. 76년부터. 이게 하도 말이 많으니까 92년도에 남북기본합의서 만들면서 한번 딱 쉬고, 93년에 또 시작을 했습니다. 그랬다가 이쪽에서 너무 공격이 심하니까 94년에는 RSOI라고 이름만 바꿔서 군사훈련을 하고 이것이 2008년에는 키 리졸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마치 열쇠 따고 들어가는 것처럼 이름도 기분이 좀 별로겠죠 그쵸? 우리는 괜찮겠지만 북한 사람들이 들을 때는 문 열고 들어오는가 거기에 독수리까지 뒤에 붙으니까. 이번에 아주 대단한 군사훈련이었습니다.

 

 

• B-2(스피릿) 스텔스 항공기가 언론에 최초 공개되다

 

B-2 SPIRIT. 스텔스 항공기. 한국상공을 나는 것을 처음으로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시속 마하 2.5까지 간다고 하는 아주 대단한 거죠. 이렇게 언론에 소개한 것은 처음이죠. 스텔스기라는 것은 비행기에 특수 제작을 해서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제작을 하고 포탄이 나가는 부분도 잘 감추어서 포탄이 나타나지 않고 쏠때만 나타나는 아주 특수 제작된 전투기죠. 엄청나게 비쌉니다. 이번에 훈련상황이 어떻게 되었냐. 여기 보시다시피 미국 미주리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떠서 중간에 공중급유를 하고 그 다음에 군산 앞바다에 와서 폭격을 가하고 다시 돌아가는 이 훈련을 하는데 600만불이 들어갔다는 겁니다. 훈련비용만. 얼마나 고가의 장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라는 거겠죠. 한국국민이 안심하고 살려면 사라. 주요 목표는 이것이 핵탄두 16개를 장착을 하고 특히 벙거버스터 부시대통령때 개발한 벙거버스터를 가지고 지하 공격을 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비행기라는 거죠. 이게 일어난 그날 B-52, B-2가 출격했을 때, 군 수뇌부와 전략지시를 하고 있고, 왼쪽 궤도표지를 보면 ‘미본토타격계획’이라는 글자가 걸려있습니다. 김정은이 군인들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B-2가 떴을 때 북한이 이것에 대한 대응으로 무수단 미사일을 동해로 여러 미사일을 옮기고 그리고 북한의 제 1단계 전투태세 명령을 내린거죠. B-2가 안떴으면 그건 안됐을지도 모릅니다. 결국은 뭐냐 우리가 과도한 공격적 훈련, 과도한 공개적 훈련에 대한 북한의 과격한 대응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죠. 북한이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미사일을 막 쏘고, 북한측 군사훈련의 모습입니다.

 

 

• 핵 잠수함과 핵 항공모함

 

이것이 핵 추진 잠수함, CHEYENNE함입니다. 이것이 해수면 지하에서 미사일을 그대로 쏴서 물속에서 육지를 향한 미사일을 쏘는 그래서 예측할 수가 없는 미사일 공격이 가능한거죠. 무서운겁니다. 이것은 키리졸브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지스함 라센함과 피츠제랄드함이 왔는데요. 전장이 모두 155m, 154m 니까 대단한겁니다. 미사일도 쏠 수 있고 어뢰를 장착할 수 있는 그런 아주 대단한 겁니다. 이지스함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 다섯 나라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까지 해서. 이게 대단한 겁니다 사실은. 이건 죠지워싱턴호라고 하는 핵 항공모함인데 미 7함대의 주력함이죠. 이게 이번에 서해 해상훈련에 온겁니다. 원래는 독수리 훈련때 오려다가 약간 늦춰졌다가 이번에 또 온다고 그러는데 해상훈련에 이게 오면 막강한 겁니다. 이 항공모함 하나에 고정날개를 단 복합항공기 90대가 있는, 여기 함정에 근무하는 요원들만 6500명이 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함정이죠. 이 핵 항공모함.

 

 

• 정전 이후 한반도 핵위기의 역사 - 핵을 머리위에 이고 살아온 역사

 

자, 정전 이후에 한반도의 핵 위기가 언제 있었느냐. 처음은 1953년 5월 미국이 정전협상이 잘 안되니까 너희 이렇게 안하면 1년 후에 우리가 핵 폭격을 하겠다.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데 스탈린이 죽는 바람에 정전협정이 빨리 이뤄지게 된 거죠. 그리고 53년 7월 정전 직후 남한에 핵무장계획을 세우고 1970년대 중반에 약 1천개의 핵탄두를 남한에 전국적으로 배치를 합니다. 미사일과 함께. 왜냐하면 이게 미사일이 함께 있어야 가니까 미사일 기지가 함께 없으면 안 되는 거죠. 그때 아마 미사일 기지가 전국에 있었습니다. 제 고향이 진천인데요. 제 기억에 미사일 기지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핵탄두가 있었겠죠. 엄청난 거 아니겠습니까. 68년도에 푸에블로호가 납치되었을 때 북에 핵공격을 검토하다 이것이 자칫 큰 전쟁으로 번질 것 같으니까 안하고 말았죠. 69년에 미국의 워닝스타 라고 하는 조기경보기가 납치, 피격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닉슨 대통령이 핵공격을 검토하다가 중지를 했구요. 76년부터는 핵 공격을 위한 팀 스피리트 훈련을 아까 말씀드린 거 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니까 미국이 안 된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핵무기를 대량으로 가져다 줄 테니 하지 마라. 그러면서 우리에게 핵폭탄 천개를 안겨다 준거죠. 우리가 전국의 핵 천개를 머리에 이고 산 셈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여기 황선생님이나 나이드신 분들은 모두 핵 위험을 안고 살아온 셈이죠.

 

 

• 통일로 가는 길, 남북기본합의서 - 국회 비준 거부와 미국의 배신으로 좌절된 불행의 역사

 

1991년이 우리에겐 대단히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1991년에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죠. 1991년에 남북 UN동시가입을 하죠. 1991년에 미 국가안보명령45호에 의해 비핵화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의 핵탄두 천개를 모두 미국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만들어내고요, 1990~92년 사이에 러시아/중국과 우리가 외교 정상화를 하죠. 이게 중요한 것이 미국이 당시에 교차승인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만약 북한과 교차승인을 하면 원칙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었다면, 한반도 역사는 오늘날 바뀌었을 겁니다. 미국의 배신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거처럼 북한과 미국과 일본이 당연히 외교관계 수립했어야 되는 거죠. 그랬으면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핵문제도 다 막아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고, 지금처럼 뒤죽박죽이 안 되는 거죠. 정말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가? 그걸 묻지 않을 수가 없죠. 무엇이 미국의 정말 숨겨진 전략이었는가.

 

여기 남북기본합의서에 노태우 대통령이 서명을 하고 있습니다. 1992년 2월 십 몇일 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국회비준을 받지 못합니다. 국회가 비준을 거부했죠. 법적근거가 없다는 것으로 거부했습니다. 남북관계가 무슨 법적관계입니까? 난 그때 국회의원 명단을 좀 놓고, 한 번 따져야 될 일입니다. 어쨌든 이때 불행하게도 비준이 안 되고, 그 다음에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는 것이 하나의 합의사항 중 하나로 되어있었는데, 팀스피리트 훈련을 92년 한해만 쉬고 93년에 국방부가 주도해서 다시 재개합니다. 이것이 비극의 싹입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이렇게 중단했으면 이것도 지금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것도 배신을 합니다. 결국엔 93년에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함으로써 그만 약속이 깨지고 남북기본합의서도 이행이 될 수 없도록 되어버린 거죠. 대단히 중요한 합의서입니다. 이 합의만 보면요 이대로 가면 그냥 통일입니다. 덧붙일게 없습니다. 사실 이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우에는 뒷얘기가 있습니다. 사실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요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기관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기독교 선언 이라는 걸 합니다. 이 문서가 사실 대단히 중요한 문서였습니다. 88년 이 문서를 만들고 이 문서가 사실 통일부에서 이 문서를 기초로 해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 졌던 것이죠. 그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이 문서를 어떻게 만들었나. 1986년에 처음으로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 기독교 대표, 세계 기독교 대표가 함께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이것이 분단이후 민간차원에서 최초로 만난 남북기독교 대표의 회의였습니다. 굉장히 딱딱하고 긴장되고 별 소득이 없는 그런 회의였습니다. 처음 만난거니까.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그 2년 후에 1988년에 2차 회의를 했습니다. 2차 회의에는 그때 제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참석을 해가지고 그때는 전의 경험이 있으니까 훨씬 분위기가 아주 좋아지고 1988년 회의에서 1995년을 한반도 희년의 해 라고 하는 것을 공동합의해서 95년까지 희년선포를 하고 통일의 길로 나가자. 그 희년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 구약전승에 나오는 건데 가장 근본적으로 뭐냐 하면 모든 포로와 죄수들을 놓아주고 모든 것을 다 원상 회복을 시켜내는 그런 겁니다. 그래야 통일을 하는 거죠. 결국 95년이 지나면서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남북기독교가 처음으로 그 합의를 해서 약속했던 그런 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영향을 미친 거고. 여기에 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문익환 목사께서 1989년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과 굉장히 중요한 합의를 해냅니다.

 

 

• 미국의 한반도 보호 전략적 지원 계획, 핵우산 - 북한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반도에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핵우산으로 한반도를 보호해준다고 하는 미국의 전략적 지원계획입니다. 여기 보면 전략폭격기 B-2가 보이고 밑에는 F-15인데 이번엔 F-22 더 격상된 비행기가 왔다갔죠. 그 밑에 핵잠수함이 보이고 이지스함이 보이고 조기경보기가 있고 이런게 다 보이죠. 이렇게 북한을 공격함으로써 한반도를 보호한다.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아마도 북한은 핵으로 공격을 받아서 엄청난 피해가 되겠죠. 그런데 그 피해는 북한만 입는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방사능 오염이 돼서 아무도 살수가 없는 그런 곳이 될 가능성이 높죠. 이걸 좋다고 지금 지지하고 나서는 것도 참 문제죠. 그러니까 한반도 비핵화? 그러면 북쪽에서 뭐라고 하냐면 남쪽에서 하는 핵우산부터 먼저 해체하자 그래서 북한이 주장하는 것이 핵군축을 하자 이제. 너희들 얼마나 엄청난 걸 가져와서 하느냐. 그런데 이번에 진짜 공개적으로 하는 걸 보니까 B-2가 뜨고 B-52가 뜨고 F-22가 뜨고 핵잠수함이 있고 항공모함이 오고 이건 뭐 북한으로써는 엄청난 당혹감과 위기감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문익환 목사의 예언자적 합의 - 6. 15선언에 까지 영향을 미치다

 

순서가 좀 바뀌었습니다만 문익환 목사님이 방북을 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때 문익환 목사님이 예언자적인 합의를 해냅니다. 이것이 사실은 김일성주석의 마음을 바꿔서 근본적으로 2000년 6. 15나올 때까지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합의였던 것이죠. 그 내용을 보면 남북한 UN동시가입과 미일/중러의 교차승인, 통일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추진한다. 정치군사회담과 경제 협력회담을 병행 추진한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단서가 있습니다.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남북대화를 지속해라. 절대 끊지 마라. 남북대화에 영향을 주는 주체사상 등 이런 것을 강요하지 마라.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우리 문익환 목사님이 하셨습니까. 영원히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얘기를 김일성 주석에게 하신 겁니다. 그 다음 돌아가셨으니까 누구도 할 수 없는 거죠.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그러나 이 합의문은 살아있는 것이고 이 합의가 바로 여기서 김일성 주석이 연방제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추진하는데 동의한 것이고 UN 동시가입에 대해서는 1991년 신년교서에서 김일성 주석이 발표를 합니다. 그래서 UN 동시가입이 이루어지고 이 점진적 평화적 단계적 통일에 대한 부분이 진행이 되는 것이죠.

 

 

• 6. 15와 10. 4 - 통일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로 한 장엄한 선언

 

이래서 결국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만들어지고 남과 북이 각각 국가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통일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한 정상합의의 최초 문서인 6. 15 공동선언을 만들어내죠. 북쪽에서는요, 이거에 대한 것이 대단합니다. 2007년 제가 정상회담 하러 갔을 때 북쪽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부터 전부 다 6. 15는 국가 기념일로 하자. 좋습니다. 합의를 했죠. 합시다. 추진해봅시다. 사실 제가 마음속으로는 저거 합의해놓고 될 수 있을까. 내려와서 행자부한테 협의를 하니까 행자부 얘기가 그런 걸 만드려면 공청회부터 해야 합니다(웃음). 6. 15를 남북기념일로 하자 이미 대통령은 바뀌었는데 그렇잖아요, 그때 막 바뀌려 할 때죠. 그러니까 행자부도 막 눈치 보면서 다음정권에 줄스려고 하는 상황에서 저 위험을 무릅쓰고 공청회를 열리가 있겠습니까? 하루하루 늦추기만 하죠. 그럼 공청회하면 뻔한거 아니겠습니까. 뭐 빨간 모자 아버지들(웃음) 보통문제가 생길게 아닌데. 그래서 못했어요. 그 다음에 제가 정부 나온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께 인사차 갔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막 저를 야단치시는 겁니다. 왜 6. 15 기념일로 안했느냐? 못했습니다. 아니 못했으면 약속이라도 하고 나와야지. 사실 맞는 말씀입니다. 할 말 없습니다. 지금도 마음에 참 남는, 죽을 때 까지 아마 제 마음속에 남아있을 하나의 빚 같은 게 6. 15를 국가기념일로 하지 못한. 북쪽은 대단합니다. 6. 15가 목표고 희망이고 과제. 우리는 아무렇게 생각 안하지만, 이명박은 특히 우습게 생각했지만, 저쪽은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일행이 평양으로 들어가는 2007년 10. 4 정상선언을 위해서 들어가는 모습인데. 저는 이때 정말 가슴이 뛰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전용차를 타고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서 당신의 각료들과 함께 평양에 들어가는데 대통령 전용차 앞에는 태극기와 봉황기가 휘날리고 그 들어가는 이 모습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입니까. 통일이 되면 이런 모습이 우리가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정말 아주 흥분된 그런 상황이었었죠.

 

 

• 전세계 핵무기 현황

 

전 세계 핵무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러시아가 한 만 6천개, 미국이 약 한 만개, 중국이 130개, 영국이 200~250개, 불란서가 350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가 아직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리라 추정하는 겁니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국제사회가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상황표인데, 북한은 어느 정도 되느냐. 5개 정도로 추정을 하는데 그동안 3차례 핵실험을 했으니까 몇 개 쓰고 남은게 한 두 세개, 서 너개 되겠죠. 그러면 그 두 세개의 핵무기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만개의 핵무기라고 하는 것은 전혀 비교도 안 되는 거죠 사실은.

 

 

• 북한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예외적 압박, 핵위기를 불러오다

 

국제원자력기구라는 것이 있어서 UN의 기구로 설립되었고 이것은 다섯 개 원자력기구는 사실상 목적이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해 주고 도와주는 기구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북한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가 IAEA인데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이 원자력 기구가 북한의 핵시설을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제약하는 역할을 지금까지 해온 거죠. 여기 보시는 것처럼 주요임무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과학적 기술적 정보교환, 핵분열물질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으로 하는 거죠 IAEA가.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문제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1974년 가입했다가 94년 6월 13일 철회 합니다. 이게 바로 1차 핵위기가 왔을 때 철회를 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핵문제가 터지기 시작하죠.

 

제 1차 핵위기는 1992년 5월 영변 5MW 원자로 등 핵 시설을 IAEA가 사찰을 합니다. 사찰한 다음에 93년 1월 미국이 팀 스피릿 군사훈련을 재개 합니다. 이게 화근입니다. IAEA가 영변 핵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합니다. 이때 북한이 핵사찰 다 끝냈는데, 왜 하라고 해. 이게 미국 측에서 너희들 뭔가 숨겨놓은게 있는 거 같으니까 더 봐야겠다. 북한은 없다. 약속대로 하자. 아니다. 이러다가 UN 안보리가 특별사찰 수용결의를 하고 이런 제재에 대해서 북한이 IAEA 탈퇴를 하고 하니까 미국이 작계 5027을 발동해서 전쟁준비를 합니다. 실제로 이때 한국에 있던 짐 레이니 대사에게 지시가 가서 당신의 자식들도 다 피난 보내시오. 여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백악관에서 클린턴 주재회의에서 10만 명 파견을 결의 하고 그 영변을 폭격하는 계획을 세우죠. 이런 상황에서 정말 안 되겠다며 지미카터 전 대통령이 급거 평양을 방문하고 북미대화의 길을 열고, 마침내 북미고위급회담 협상을 하고 94년 10월 21일 제네바기본합의를 이끌어내게 되죠. 이걸 좀 더 상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 작계 5026, 5029 - 지금은 1994년 만큼의 위기이다

 

핵 선제공격이라고 하는 작계 5026, 5029가 무엇이냐 하면, 아까 말씀드린 엄청난 폭격기, B-2 장거리 폭격기, B-1 전략폭격기, B-52는 여기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그런거 부터 시작해서 항공모함, 핵 잠수함, 이지스함 이런 것이 총 동원돼서 북을 공격하는 이런 건데, 이 전쟁이 만약 일어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때 계산이 시뮬레이션 한 결과 한국군이 49만명이 죽고, 미군이 5만 2천 명이 죽고, 시민이 백 만명 이상이 희생당하는, 단기전에서. 한국군 49만명이면 우리 군대가 다해서 60만인데 거의 다 죽는다는 뜻이죠. 이런 전쟁을 하겠습니까? 이런 전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은 클린턴이 전쟁계획을 접습니다. 나중에 제가 짐레이니 대사가 은퇴한 다음에 2005년도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그때 노무현 대통령 옆에 제가 배석을 했었는데, 아주 소상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을 했는데요. 정말 전쟁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미국은 정말 깔려고 했습니다. 1994년 위기 만큼 지금이 위기입니다. 그때는 지미카터가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지금은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지미카터 대통령이 또 한번 가자는 요청을 했지만 미국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 대화로 위기를 극복해내다 - 지미카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

 

그때 지미카터 대통령이 평양을 가서 김일성주석과 뱃놀이 까지 하면서 화기애애한 회담을 하면서 이때 전쟁위기를 고위급대화의 길로 엽니다. 국무장관급 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합니다.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합의했고, 영변 핵개발의 중단을 이뤄내는 약속을 받아낸거죠.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지미카터의 업적이었습니다. 이때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으면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고, 아마도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가지 않았을까(웃음). 김영삼 대통령이 눈감기 전에 그걸 정말 애석하게 생각할 거에요.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나. 회담을 불과 2주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준비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당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청와대 통일안보비서관이었는데 엄청나게 준비해서 정말 잘했습니다. 그런데 운이 참 나쁜 거죠. 우리 국민의 운이 나쁜 거고 한반도의 운이 나쁜 겁니다. 그때 만일 살아있었으면, 김일성과 회담을 할 수 있었으면, 정말 한국은 바뀌었을 겁니다. 왜,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 내용이 기가 막혔었거든요. 그 취임사 내용에서 민족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민족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 하면서 김일성 주석에게 한라산 기슭에서 만나도 좋고, 백록담 밑에서 만나도 좋고, 어디서든지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는 얘기 다해서 민족의 평화를 가져오자. 이렇게 엄청난 취임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회되면요 돌아가시기 전에 취임사 한번 읽어보십쇼(웃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나 그런 것도 겸해서 살펴보시고요(웃음). 아, 그건 정말 명문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그만한 정도의 취임사에 민족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습니다.

 

 

• 제네바 기본합의 - 꿈과 같은 내용을 담아냈으나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다

 

이 결과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갈루치 미 국무성 차관보와 그리고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상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하는데 이 합의의 영어 이름은 Agreed Framework, 합의의 틀 이런 오묘한 이름의 합의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기가 막힙니다. 그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게 뭐냐, 2003년까지 200만 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경수로 2기를 제공한다. 경수로 완공 시 까지 에너지 중유 50만 톤은 매년 공급을 한다. 영변 흑연감속로 시설을 동결하고 이것을 해체한다.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 영변 핵시설 포기하는 대신에, 경수로를 지어주고 에너지 공급을 한다. 이때가요, 북한의 전력문제가 심각했을 때입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폴란드나 헝가리나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 무너지면서 이 북한의 기댈 수 있었던 경제적 파트너들이 다 무너지니까 북한 경제가 말할 수 없는 파탄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에너지문제. 1991년부터. 이 합의가 1994년 때 아닙니까 이때가 정말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공교롭게도 94년 이 합의한 다음에 95년부터 자연재해가 늘어서 북한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말 고난의 행군을 했던 그런 시기죠. 전기를 공급한다. 최우선과제였습니다. 100만 kw 짜리 경수로 두 개를 가동 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고 대북금융거래를 포함한 무역, 투자제한을 완화한다. 북한에 대해서요, 1950년 전쟁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적대적인 적성국으로 지명하고 적성국 교역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적성국은 일체 미국과 관련된 국가와 교역을 할 수 없도록 딱 막아 놓은 겁니다. 미국만이 아니고 미국과 관련된 국가와. 그것이 적성국 교역법이라는 것이었고,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명하면서 그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가 있었던 거죠. 이 제재를 풀어 달라. 사실 북한의 인권문제, 경제 문제가 안 풀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한 몫을 이런 제재가 담당하는 겁니다. 그 다음 평양-워싱턴에 양국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양국 관계의 진전에 따라 대사급의 관계로 격상시킨다. 무지개죠. 레인보우입니다 정말. 이런 꿈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그만 이 합의를 한 다음에 불과 한 달도 채 안 되가지고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었는데 민주당이 패하고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다수당이 되면서 클린턴 정부의 모든 것 특히 북한과의 합의에 대해서 그냥 공격을 해대고 못하게 막아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건 시작하자마자 암초에 부딪혔던 것이죠. 이대로 진행이 됐으면요, 잘되는 겁니다. 그 어렵고 어려운 경수로를 지켜내고 지켜가는 데 그만 마지막 가서 문제가 생깁니다.

 

 

• 이해할 수 없는 한-미 언론의 왜곡보도

 

조선일보 보도입니다. 김일성 총 맞아 죽었다. 저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저렇게 보도해놓고 뭐라고 얘기도 안합니다. 2001년 11월 25일 뉴욕타임스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냈습니다. “탈레반 다음은 누구냐? 북한을 잊지 마라” 무서운 압박입니다. 북한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사태를 다 봅니다. 미국이 저렇게 끊임없이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거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죠. 우리 한반도를 정말 일촉즉발의 전쟁이 일어날 거 같은 선정적인 보도로 섬뜩한 충격을 주는데 뉴욕타임즈의 이 보도에선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생산의 위험성을 거론하고 북한이 이라크와 함께 미국의 다음 번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거죠. 이거 뭐 한국이란 나라가 완전히 미국의 손아귀에, 미국의 언론의 손아귀에 놓인 거나 다름이 없는 거죠. 뉴욕타임스는 지난 1998년 미 정보기관에서 흘린 정보를 받아 금창리 핵의혹 시설을 보도함으로써 북한의 핵 위험론을 조장하고 한반도를 전쟁위기로까지 몰고 간 전과가 있습니다. 후에 확인한 결과 금창리는 핵 시설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이 보도를 하니까 북한이 그럼 같이 조사해보자. 그래서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 조사단이 가서 엄청나게 금창리를 샅샅이 뒤졌는데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뉴욕타임즈에게 조사하는 거 좋다, 그런데 조사하려면 돈을 내라. 그래서 아마 그때 10억불인가 20억불인가 벌었죠. 참 뭔가 좀 잘 해명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 한반도평화프로세스 - 조미공동코뮈티케 - 북일 평양선언 : 유일한 성공작

 

2000년 평양에 울브라이트 미국국무장관이 방문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납니다. 이것이 미 국무장관으로는 최초의 방문입니다. 이때 참 희망적이었죠. 북한의 조명록 차수는 미국을 방문해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서 회담을 하고 10월 12일 조미공동코뮈니케를 합의 발표하게 되는데 이 내용은 제네바 합의와 거의 비슷하고 거기서 좀 더 강화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합의해 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말 중요한, 워싱턴코뮈니케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거죠. 2000년에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1998년 6월 9일 열린 김대중-클린턴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하게 되는 게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미국과 한국과 일본이 함께 합의해서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긴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 하는 이런 제안이었고, 한국정부가 주도해서 제안했고 미국과 일본이 찬성을 해서 진행하게 된 것이고요. 이때 클린턴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화를 받아서 “이제 한반도문제는 김대통령이 주도해주기 바란다.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을 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 정말 클린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서 핸들 잡아준 건 이명박이죠(웃음). 김대중 대통령은 못 잡아보고. 잡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잡으니까 안 되는 거죠. 그리고 2000년 12월에 북미공동코뮈니케를 발표를 하고, 2002년 9월 17일에 북일 평양선언을 하고 이것이 유일하게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북한의 핵개발을 잠시나마 멈추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중요한 일입니다. 이 합의가, 분위기가 만들어 진 것. 한국정부가 주도하고 미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동의를 하고 이걸 그대로 진행을 해서 한국, 미국, 일본이 모두 정상회담 급 회담을 하면서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그런 아주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낸 거 아니겠습니까. 아주 중요한 합의인 것이죠.

 

 

• 9.11사태 - 갑작스런 불행이 찾아오다

 

그런데 불행이 온 겁니다. 9. 11사태. 미국사람들이 충격을 넘어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자기들이 확신하고 있었는데. 뉴욕의 자본주의의 가장 상징인 이 쌍둥이빌딩이 쌍둥이에게 폭격당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미국사람들이 완전히 무너진 겁니다. 정말 멘탈 붕괴 상태에 들어간 거죠. 이거 보십쇼 하늘에서 본모습은 더합니다. 엄청납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이때 얼마나 치를 떨었겠습니까. 이 사건이 일어나니까 부시는 한층 더 독이 올라가지고, 북한이 테러지원국이고 저 사람들 절대 이 지구상에서 없애야 할 정권이고, 무너뜨려야 할 정권이고 저거 조금만 있으면 붕괴될 정권이니까 악착같이 밀어붙이자. 하는 생각을 이때 단호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고 미국사람들도 젖어들어가게 된 것이죠. 이 9.11 사태라는 게 정말 역사를 바꾼 겁니다. 참 우리에겐 정말 비극이었던 거에요.

 

 

• 드디어 터진 불행 - 제임스 켈리 특사의 미 의회 보고

 

드디어 문제가 나왔습니다. 2002년 미국의 제임스켈리 특사가 강석주와 회담하면서 이때 마침내 중요한 문제를 얘기를 하죠. 너희 고농축우라늄 하고 있지 않냐. 북쪽에서 우린하고 있지 않다. 무슨 소리냐 나는 분명히 확증을 가지고 왔다. 증거를 내놔라. 없다. 못 내놓는다. 그리고 강석주가 그래도 우리가 주권국가이니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는 나라다. 그러니까 이 얘기를 듣고 제임스 켈리가 가서 보고하기를 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자백했다. 이렇게 의회에 보고하고 나니까 미국이 난리가 난거죠. 이 난리 속에 가장 중요한 게 뭐겠어요. 경수로. 경수로 사업 중단. 근데 그냥 중단은 아닙니다. 1년 연기, 1년간 공사 중단. 그 다음에 중유공급 중단. 나는 이게 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경수로의 최고 중요한 부분이 원자로가 들어가는 부분에 마지막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끝난 다음입니다.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전체 공정의 35%정도 인데 이때까지가 공사기간이 길고 그 다음부터는 지상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거죠. 미국의 실제 의도는 진실로 무엇이었을까? 혹시 이것이 경수로를 지어주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실은 아니었을까? 이 당시 전문가들의 판단으로는 북이 원심분리기라든가 고농축우라늄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런 증거도 없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럼 정말 미국의 의도가 뭐였을까? 경수로를 지어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 했을까. 전 그렇게 믿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큰 나라인데 200kw 경수로 때문에. 이렇게 없는 걸 있다고 만들어서 얘기하고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신사인데. 싸이가 얘기하는 젠틀맨인데(웃음). 안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회의하고 켈리가 미국에 가서 했다. 그러면 그런 거지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북한이 아니라고 해도 증명해줄 증인도 없고, 누가 대변해줄 사람도 없고, 북한이 꼼짝없이 당한 거죠.

 

 

• 9. 19 합의를 이끌어낸 6자 회담, 그러나 악순환은 여전히 반복되다

 

그래서 결국은 6자회담이 열립니다. 6자회담이 열려서 노력을 많이 해서 2005년 9.19 합의를 했는데 이때도, 9. 19합의를 하자마자, 미국이 배신을 하죠. 어떻게? BDA라는 마카오 은행에 북한 계좌가 45가 있는데 이 45개 계좌가 북한의 불법자금을 유통시키고 있고 마약자금을 유통시키고 있고 위폐를 유통시키고 있는 계좌이기 때문에 이것을 동결시킨다. 그 계좌동결과 함께 9. 19합의도 동결이 된 겁니다. 정말 미국의 의도가 뭘까? 정말 미국은 9. 19 합의를 통해서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 가만히 보면 미국이 맘만 먹었으면 북한 핵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상한 사건이 벌어져서 무산되는 이런 것이 우연의 일치 내지는 우연한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의도된 계획이었나? 이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그러나 전 후자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 가는 자유고요(웃음).

 

 

그래서 이제 한번 정리를 했습니다만, 뉴욕타임즈가 금창리핵시설보도를 하고 북한이 이것을 조사수용해서 오보로 결정이 나고 이후 워싱턴코뮈니케를 발표하고, 9.11사태 이후 북한이 3대 테러국으로 지정되고, 흑연감속로 재가동을 선언하고, 제임스켈리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문제제기를 하고, 중유제공 중단을 하고, 그러니까 북한이 핵 동결 봉인조치해제하면서 NPT 재 탈퇴를 하고, 6자회담을 하고 9. 19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더니, 북한 BDA 은행계좌를 동결하고 북한의 1차 핵실험이 강행되고, UN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나오는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이 되죠. 악순환입니다. 아니면 의도된 수순인가.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2002년 8월 3일 콘크리트 첫 타설 작업을 하는 풍선도 터지고 아주 축하분위기잖습니까. 원자로가 들어가는 부분 타설 작업. 이때에 HEU 프로그램 핵 문제 제기로 결국 문을 닫았고 북미관계를 완전히 단절상태로 만들고 경수로를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다.

 

 

• 북한 핵능력의 강화, 악순환의 기묘한 시퀀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전략적 인내

 

북한이 핵능력이 강화되었죠. 2007년에 2.13합의를 발표하고, 6자회담 10.3 합의를 발표하고 합의에 따라 영변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후에 북미 간 10. 3합의 이행에 관한 충돌이 벌어지면서 북한이 마침내 광명성 2호를 발사하는 데 마침 이날 위대한 연설 프라하에서 오바마가 세계비핵화 선언을 합니다. 북한이 하필 그날 쏠건 뭡니까(웃음). 남의 집 잔치에 재를 뿌려도 유만부득이지. 참 이 못 말리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납득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도 납득못하시겠지만. 이것도 북한의 의도된 계획인가. 그런데 사실 오바마 연설하는데 거기다 재 뿌릴 이유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근데 어찌되었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고가 나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고 안보리 제재가 결의되고 마침내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게 되죠. 해커박사가 갔을 때 원심분리기를 공개하고 바로 천안함 침몰사태가 일어나고, 이 시퀀스가 조금 묘하죠. 그 다음 2010년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5. 24조치를 하고 연평도 교전이 일어나고 북미대화를 통해 2.29 합의를 하지만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하는데 실패하고 이때 왜 발사를 했습니까. 하지말지. 난 참 이것도 북한을 이해를 못하겠는 거에요. 물론 뭐 북한은 4월이 특별한 달입니다. 태양절이 있어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파티를 전국적으로 국경일로 지키는 나라고 이때에 광명성 3호라고 하는 것은 김정은의 작품이 아니고 김정일의 유업입니다. 김정일이 만들어 놓고 유복자처럼 남겨놓고 간 거죠. 그러니까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쏠 수밖에 없는 거였겠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있었던 거 아니었겠습니까. 왜냐하면 2010년 2월에 오바마가 제2기 대통령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에서 뭔가 하나 했다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뭐했습니까. 이명박을 도우면서 끊임없이 했던 얘기는 ‘전략적 인내’ strategy patience.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전략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 이 얘깁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시 8년 오바마 4년 미국은 대북정책에 관해 1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한 겁니다. 근데 핵실험 자기들이 역할을 했으면 막을 수 있었던 것이거든요. 무슨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인내에요. 그렇게 선거운동하면서 지난 50년 동안 지난 사람들은 무엇을 했느냐. 아주 터프하게 단호하게 직접 만나서 다 해결하겠다. 이런 거짓말을 해대고 말이죠(웃음). 나는 정말로 납득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저는 오바마에게 직접 얘기를 하고 싶어요. 당신 왜 거짓말 하느냐. 실제로 북한 사람들도 굉장히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오바마 선거운동 결과를 보고.

 

 

• 정문헌이 주장하는 정상회담 대화록의 비밀협약은 확실히 없다

 

이런 이상한 사진이 올라가서 안됐습니다만.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상회담 하는 모습입니다. 정문헌의원이 여기서 뭐 비밀협약이 있었다. 그래서 저희가 나가서 비밀협약 없다. 이 얘기를 했는데 끊임없이 뭐 정상회담 대화록에 이런 주장을 하면서 그래서 전혀 사실무근이다. 만약에 정문헌 이가 봤다면,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본문에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 여러분 제가 아주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정문헌 이가 주장한 내용이 대화록에 없습니다. 정치라는 게요, 참 무자비하고요, 비도덕적이고요, 도덕적 정치라는 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노무현대통령이 참 힘들었던 거죠. 원칙의 정치를 하려니까 얼마나 어렵습니까.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10.4 선언이라는 그 위대한 선언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고 유효한 것이죠. 6. 15, 10. 4 다 유효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6. 15, 10. 4를 뒤집은 이명박의 5. 24조치 - 전쟁을 기념하는 이상한 나라

 

그런데 이명박은 완전히 뒤집어서 5. 24조치를 하고 말았습니다. 난 참 이 장소의 이름도 이상해요. 세상에 전쟁을 기념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전쟁이 뭐 자랑스러워서 기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린 전쟁기념관이 있습니다. 평화기념관은 있어도 전쟁기념관은 세계에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여기 가서 저 5.24조치를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누가 아팠습니까. 북한이 아픈 게 아니라 우리만 골병든 거죠.

 

 

• 북한의 원심분리기 시설과 은하 3호, 부시정권의 MD PLAN

 

이런 안보리의 여러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여러 가지 결의가 있는데 이 결의라는 것이 지난 20년간 돌이켜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핵실험이나 미사일 쏜 다음에 제재해 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쏘기 전에 예방주사를 놔서 못 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지 쏜 다음에 제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헤커 박사가 밝힌 북한의 원심분리기 시설인데요. 그 옆은 제3차 핵실험 있을 때 지진파를 보고 핵실험이 있었구나 밝히는 사진이고 2차 핵실험의 2배 이상의 강도로 나타난다고 대략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근데 지하갱도가 워낙 잘 되어가지고 밖으로 나오는 기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진파로만 확인을 합니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해커박사의 얘기입니다.
이것이 부시정권이 만들었던 MD PLAN. 지하로 들어가서 지하 60m에 6m짜리 콘크리트를 부실 수 있는 그런 폭탄 이것이 바로 이것이 벙커버스터입니다. 이걸 개발했는데 지하 60m 라고 하면 건물로는 20층입니다. 그만큼 지하로 들어가서 폭탄이 터지는 겁니다. 위에서 터져서 들어가는게 아니고요. 정말 소름끼치는 어마어마한 무기. 이거를 주로 쏘는 비행기가 B-2입니다.

 

북한이 은하 3호를 성공시켰죠. 로켓을 발사해서 우주에 인공위성을 띄우는 것을 성공한 겁니다. 제일 여기서 어려운 것이 1단 로켓분리죠. 여기는 고체연료를 넣는데, 우리는 액체연료를 쓰기 때문에 주입하면서 카운트 다운을 해가지고 그 시간을 넘기지 말고 쏴야만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여기는 고체연료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죠.

 

 

• 북한과 미국의 엇갈린 선택 - 그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아까 말씀드린 김대중 대통령이 운전해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운전해가지고, 약간 사단이 난거죠.
왜 이렇게 엇갈린 선택을 했을까. 북미간에. 아까도 얘기한 것이지만. 2001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을 했을 때, 2001년 10월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합니다. 꼭 이래야 될까 북한은. 미국은 지금 9. 11 사태로 다 멘붕 상태에 있는데 핵시설 재가동 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는 정말 뭐냐. 2009년 4월 오바마의 프라하 비핵화 연설 때, 북한은 광명성 2호 로켓을 발사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 로켓이 평화적 이용을 위한 우주개발의 목표가 있더라도 좀 참을 수 있었던 것 아니었겠느냐. 왜 그날 오바마가 연설하러 나가기 직전 새벽에 쏴가지고 오바마의 연설문에 친필로 로켓이 아닌 미사일을 쏘았다. 그래서 이게 미사일이 된 겁니다. 참 애석한 일이죠. 마지막에 2. 29합의도 마찬가지에요. 2. 29 합의를 했으면 지켜볼 일이지 왜 4월 14일에 광명성 3호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에 처음 쏘는 것이라 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조금 참을 수 있었던 거 아니었겠어요? 왜 이렇게 할까.

 

미국도 왜 이런 선택을 할까? 97년 KEDO가 경수로 착공식을 거행하자마자 얼마 안 되서 뉴욕타임즈가 금창리 지하핵시설 의혹제기를 해서 찬물을 끼얹고. 2005년 6자회담 2년 만에 9. 19선언을 이끌어냈는데 그날 미 재무성이 BDA 북한 계좌를 동결시키고, 2007년 10.3 합의로 북핵 문제 종결기회를 얻었는데 미국이 이런저런 이유로 합의 이행을 중단시키고 미국도 일단 이때 진행시켜놓고 그 다음 문제는 그 다음에 해결 할 수 있었는데. 정말 의도가 뭐냐 라는 걸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해야 할 것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민족”과 “대화”의 가치를 논의의 중심에 두라

 

그럼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뭐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문제를 우리가 논의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칸 안에 있는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협정, 군축, 대북개발협력프로젝트,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이런 것들이 우리의 과제가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향후 5년간 진행될 한반도 평화체제 어떻게 진행 될 수 있겠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다른 게 아니라 이런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난 20년의 교훈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핵을 전제하는 한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과는 모든 회의는 모두 핵이었습니다. 남북 간의 합의에서는 기본합의서에서 보듯이 전부 민족입니다. 7. 4 공동 성명부터 10. 4선언까지 모두가 민족이라는 것을 가운데 두었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고, 북한이 핵을 선택폐기 이건 절대로 성공을 못합니다. 결국 이제 결론적으로 본다면, 핵 문제를 전제하는 한 한반도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고 지속적인 대화와 평화적 방법이 오직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길에서 긴 과정 속에서 북핵문제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고요. 4. 2선언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 15공동선언, 2007년 10. 4 정상선언의 기초로 민족의 통일을 지향하였고, 논의의 중심에 “민족”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두는 것이고, 이 이야기는 한반도 문제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남북이 주도적으로 진행시켜 나가야지 미국이나 중국이 할 일이 아니다.  세 번째, 북은 비핵화 원칙 아래 핵확산을 하지 않는 다는 입장표명이라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긍정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논의가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렵습니다. 북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일정한 어떤 구체적인 안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죠. 한미, 한중, 한일 외교를 정교하게 균형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까도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공격을 하고 이게 천만의 말씀이에요. 북중 관계에 대해서 페이퍼도 있습니다만 대단합니다. 어느 한쪽이 군사적 공격을 받으면 군사적 지원뿐만이 아니라 어떤 지원도 하도록 명문화가 되어있습니다. 그 북중상호방위조약이라는 문건의 내용이 수정되지 않는 한 어림도 없습니다. 그 문건은 20년마다 수정하도록 되어있고 재승인을 하도록 되어 있구요 지금 아직 창창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중국한테 북한 야단 좀 쳐라 저거 문제가 있다. 어떻게 야단을 칩니까.

 

 

• 평화를 포기하지 말 것, 끊임없이 대화할 것, 압박과 제재의 수단은 무용했다는 것을 알 것

 

자, 여러분의 생각이 남아있습니다. 오늘 얘기를 마치면서 제가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죠. 우리에게 가장 큰 것은 전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절대 평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평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한반도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Engagement. 대화와 만남을 통한 끊임없는 대화 밖에 없다. 절대로 무력을 사용하거나 이런 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선 북핵폐기라든가, 압박과 제재의 수단이라는 것은 지난 20년간 무용했다. 소용이 없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 시키는 것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한미 군사훈련을 전반적으로 수정해서 대안을 찾아야 될 것이고, 한반도의 군축문제를 본격적으로 상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 공동안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오늘 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질의응답 ◈

 

Q : 외교관계에 있어서 한미관계, 한일, 한중 관계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전에 남북이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미국으로는 너무 편중되어 있고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잘 안되어 있으니까 중국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서 외교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분단자체가 사실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으로 이루어진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런 구조 속에서 현재 한미 군사동맹이라고 하는 것 자체를 수정한다거나 약화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러면, 미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한층 더 역할을 강화해야 할 텐데. 그런 경우에는 예를 들면 임동원 장관 같은 경우엔 제안하기를 이제는 6자회담이 아니라 4자 회담의 틀로 새롭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남북이 공고한 입장을 가지고 중국과 미국이 참여한 그런 장치. 이것이 바로 지난번 2007년 10.4 정상선언때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된 내용이죠. 그래서 사실은 관련국을 축소하자면 남북 그리고 미중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관계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 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해야 될 것이 남북 대화고 남북 간의 먼저 견고한 대화와 신뢰관계가 구축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런 구축을 하기 위해서 남북 간 신뢰는 어떻게 구축되는 거냐. 물론 교류협력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적 신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미군사훈련을 조금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핵전쟁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아니고 훈련을 충분히 하더라도 우리가 한국군이 단독 군사훈련을 하든가 그런 것이 옳지, 굳이 미국이나 일본까지 끌어들여서 여기서 군사훈련 할 필요 없지 않겠느냐. 지금 이제 이번 해상군사훈련이 며칠 있으면 시작이 되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6월 달에 가서 한미일 3국이 참여하는 군사 훈련이 있고 계속해서 1년 내내 군사훈련이 있는 겁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문제라는 걸 풀어가기 상당히 힘든 거죠. 예를 들어서 군사훈련 기간 동안이면 남북대화가 일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군사훈련이 한참 막바지에 달하는 상황에서 실무자 회담이 있다 내일까지 나와라. 이건 북한 측에서도 아주 당황스러운, 예의 없는, 관행이 아닌, 지금 막 싸우고 있는데 무슨 개성 얘기를 회담 와서 되겠습니까? 이건 정말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건 있을 수는 없는 문제죠. 질문에 대해서 간략히 더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것이 한중간의 외교를 잘못한 겁니다. 이게 순서도가 있습니다. 순서도 바뀌면 안 됩니다. 한-중-일 이순서가 바뀌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외교에 있어서 프로토콜이고 이런걸. 잘 지켜가면서 해 나가는데, 아까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간 견고한 협상위에 같이 참여하고, 우선 군사적 긴장관계를 떨어뜨리는 것이 신뢰의 첫걸음이다 하는 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Q. 제 질문은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이번 대북사태 관련인데요, 한 경제지에서 북한이 처음에 개성공단입주시에 대기업의 입주를 바랬는데 북한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왔다는 분석을 했는데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여쭤보고 싶고요. 두 번째로 류길재 현 장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언론에 나오는 정보로는 대북온건노선을 지향한다는데 과연 어떤 분인지. 세 번째로는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남북 FTA에 대해서 구상하셨다고 하는데 이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우선 개성 공업지구의 1단계 작업을 마치고 입주기업을 선정하는 모든 과정은 산자부가 처리합니다. 통일부가 관장하지 않고. 그런데 이건 제조업 분야이기 때문에 구획을 정해가지고 그 구획에 적절하게 맞는 업종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우리도 대기업과 외국기업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당시에 제가 독일대사관 통해서 독일 기업도 얘기한 바가 있었고요. 외국기업들이 들어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외국기업들은 역시 주저하는 것이 리스크의 문제입니다. 남북관계가 그렇게 안정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이미 노무현정권이 인기를 잃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좀 어렵지 않았을까 하고요. 제조업 분야이기 때문에 대기업은 들어올만한 것이 사실 없었습니다. 그러나 2단계의 250만평을 개발하게 되면 업종자체를 좀 더 대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확대할 수 있는데, 그것이 왜 어려운거냐. 미국의 적성국 교역법의 제약 때문에 컴퓨터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심지어 낚싯줄도 못가지고 들어가는데 왜냐, 낚싯줄을 가지고 낙하산 만드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낚싯줄도 못 가지고 들어갑니다. 제한 품목이 많았던 것이 다 적성국교역법의 문제였죠. 2007년 사실 마지막에 BDA 문제를 풀면서 적성국 교역법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제한 조치를 풀기로 미국정부가 결정을 하고 미국 의회에도 다 보고를 했는데,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아서 결국 그것이 없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미국정부의 착오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류장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아서 뭐라고 평가할 자료가 없어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라고요 더구나 현직 장관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2007년에 실제로 남-북 FTA가 아니고 남북경제공동체의 구상을 저희들이 했었죠. 이것은 다만 남북만이 아니고 해주공업단지, 남포 공업단지, 안변공업단지가 형성되고 이것을 전체적으로 묶어내게 되면 동북아 전체에 인구가 약 2억 정도에 달하는 세계에서 인구밀도로나 생산시설 기반으로나 물류의 인프라로나 자연의 환경으로나 가장 좋은 경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곳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장래의 희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개념이 다르지만, 경제 + 평화 이걸로 가지고 가자. 그러니까 평화라고 하는 것이 경제라는 기반위에 있어야 안정적인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경제개발이 되는 것이 아니고, 경제 개발을 통해서 경제 협력을 통해서 평화를 구축한다 그런 이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라는 것도 그렇게 해서 구상이 나온 거죠. 다시 말하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것이 평화만 보장하면 뭐하느냐. 어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서 어민들의 공동어로수역을 만들고, 어민들이 서해 협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것을 발전시켜 나가면 서해 평화를 구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관점이 있었던 것이죠. 구체적으로 남-북 FTA는 논의한 바가 없었습니다.

 

 

 

강연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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