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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모두의 어머니

박종수 / 청년칼럼 / 2014.10.15 58.142.199.147

 

나의 어머니, 모두의 어머니

   

   명절이 다가오면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학생이었던 아들은 어느덧 결혼하여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어느덧 학생이 된 두 자식을 데리고 고향 집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고된 농사일이 쌀가마니가 되어 자식들에게 주어질 때 할머니는 가장 보람차다. 한여름의 태양 볕에서의 노고는 자식들의 식탁 위로 올라가고, 그 뿌듯함은 원동력이 된다. 직접 기른 배추와 고추는 서울로 올라가는 자동차 안으로 옮겨지고, 할머니는 미소를 짓는다. 그랬던 할머니가 갑자기 쇠약해지셨다. 계단 위에서 넘어진 게 화근이었다. 곧장 일어나 다시 일에 몰두하셨던 할머니는 다시 일어나는 데 6개월이 걸리셨다. 그 후, 할머니의 눈빛은 서서히 죽어갔다.

  

  가난하지만 모두 다 그러하였기에 부끄러움이 없었던 시절에, 아버지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장남이 우선이었기에 할머니의 장남은 모든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시내의 명문 중학교에 입학했다. 결국, 개천에서 용이 나듯 아버지는 누구나 아는 대학에 입학하여 아무나 될 수 없는 직업을 가지셨다.

 

   반면에 어머니는 주부였다. 가정주부는 가정을 돌보아야 했고 나와 동생의 교육이 어머니의 가정이었다. 바쁜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유년 시절의 나는 어머니와 많은 일을 함께하였다. 나에게 어머니는 사랑이었고 교육이었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녁 메뉴의 결정권은 언제나 나와 동생에게 있었고, 아버지의 월급은 모두 나에게 투자되었다. 문득 어머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알지만, 나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름 대신에 어머니로 불리고 어머니로 행동하면서 자신을 잃어갔다. 아직까지 나의 가장 큰 효도는 어버이날의 카네이션과 어머니의 생일선물이 다였다.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어머니가 예전부터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을 20년 만에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랑에 보답하며 언젠가 돈을 모아 세계 곳곳을 여행시켜드리고 싶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개천에서 용이 된 아버지는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할머니는 본인과 가까이 살고 있는 작은 아버지나 고모보다도 아버지를 좋아하셨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주장도 아버지의 의견과 부딪힐 때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총애를 받는 아들은 명절에만큼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은혜를 갚듯 효도를 하였다. 할머니는 자랑거리인 아버지를 이웃들에게 인사시키고, 아버지는 비싼 음식점으로 할머니를 데려갔다. 나는 이러한 이상적인 그림에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미래의 나 역시 바쁜 와중에도 명절에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할머니는 허리를 다치고 무릎을 다쳤다. 다른 이에게는 다쳤다라는 세 글자로 의미를 전달하지만, 의사는 본인에게 조금 더 전문적이고 어려운 문장으로 현재의 상태를 설명했다. 인간은 모든 상황에 면역이 생기는지 집안 어른들과 할머니까지도 상황의 심각성보다는 불편하게만 생각했다. 다음 명절과 그다음 명절에는 상황은 점점 약화되었다. 한 번 다친 허리는 두 번 다치기 쉬웠고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생명의 위협보다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큰 수술이 또다시 할머니를 지나쳤고, 아버지는 걱정을 하면서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도 세월이 지나면 어머니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일을 멈추지 못할까. 아버지는 연일 한숨을 내쉬면서도 매일 출근을 했다. 걱정이 담긴 전화는 끊이지 않았지만 고향집을 내려가지는 못 했다. 할머니는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어했다. 온종일 누워만 있는 할머니의 소식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모와 작은 아버지가 할머니 근처에 살았다. 할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아버지의 전화기는 곧바로 작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 전부를 타인에게 바칠 수는 없는지 할머니는 언제나 도움을 받지는 못 했다. 그들도 그들만의 삶이 있었기에 책임을 물을 순 없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죽어갔다. 안정을 취하고 고된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멈추지 못 했다. 식사를 위해 몸을 일으켜야 했고, 청소와 빨래와 같은 집안일은 끊이지 않고 생겨났다. 소작을 부치자는 주장에 아직은 멀쩡하다며 반대하던 할머니는 농사일마저 그만둘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작과, 밭의 처분은 손해가 크다며 다시 반대하셨다. 매 순간이 고통인 그녀는 천천히 죽어갔다.

 

  아버지의 무력함을 보았다. 월급은 올랐지만 그만큼 자식에게 투자했다. 부모는 대대손손 자식의 미래에만 투자했다. 아버지에게 돈은 있지만 할머니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빵이 생기면 장남부터 차례로 먹이는 할머니처럼,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 자식에게 먼저 사용했다. 그러나 할머니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사회는 진심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버지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용이 된 자식의 무능함에 서서히 죽어갔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성공하여 가족의 부를 책임 지려는 어린 날의 꿈은 현실에 부딪혀 깨져갔다.

  

  이십 대의 나는 직장을 갖추고 돈을 벌어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모은 돈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도 본인만의 어머니의 모습을 이십 대에 그려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어머니는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돈은 넘치지 않는 한 모자라다. 대단한 직업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며 걱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였다.

 

  이것이 나의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두렵다. 커가는 자식들에게 마음이 가고, 아직은 괜찮다며 부모를 밀어낸다. 고향집을 찾는 명절날에 가장 큰 화두는 얼마나 차가 막혔나이다. 이렇게나 막히는데도 고향집을 찾았다고 부모에게 투정 부린다. 고향집을 나오면서도 서울까지의 길이 얼마나 막힐 것이라고 강조한다. 낳아주고 키워주고 희생한 나의 어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 또한 부모보다는 나의 자식에게 희생을 하고 나의 자식은 나에게 보답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한 도리를 나의 자식에게 대신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한다. 나만의 문제인지 제도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이상한 사회이다. 어떤 법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잘못된 사회이다. 아니면 나는 나의 잘못을 변명하기 위하여 제도를 탓하는 것인가 무섭다.

 

  희망적일 때도 있다. 어머니의 생일날 깜짝 선물로 동생과 운동화를 선물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너무나 고마워하여 뿌듯한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좋아했고 나는 만족해했다. 운동화에 만족해하며 조금은 죄책감을 덜었다. 나는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부모님이 있을 때 잘하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기회를 놓친 사람일 것이다. 기회가 있어도 내가 과연 잘할지 의문이다. 나를 가장 사랑해준 부모가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게 인생이다. 사실 큰 교훈이 있는 글은 아니다. 누구나 아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집 밖을 나와 살고 있는 오늘도 이런저런 핑계로 안부 인사조차 하지 못 했다.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된다. 창문으로 스치는 새벽 밤바람이 차갑다. 이번 겨울에는 어머니에게 따뜻한 장갑을 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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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종수

"죽기 직전의 내가 돌아온 순간이, 지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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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시무 2014-10-16 00:44:36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이시는 내용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중학교때까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봐지는 데 할머니 희생을 엇나갔던 철부지 소녀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뇌수막염 수술에서 안 깨어 중환자실에서 있을 때에 눈감은 할머니를 보면서 차가운 손을 잡으며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 하며 신의 영역에 부탁을 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잘 계시는 데 더 잘 되는 순간을 위해 못 찾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지만 다시금 할머니의 정성을 느껴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종수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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