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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더연 / 청년칼럼 / 2014.07.26 115.23.186.180

핏빛이 아닌 장미의 붉은빛으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습을 보름이 넘도록 지속하고 있다. 민간시설까지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무

고한 더운 목숨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있다. 또다시 지구촌의 한 구석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우리가 노래해야 할 세상의 붉은빛이 ‘피’가 아닌 ‘장미’이길 기대한다면 그것은 요원한 바람일까?

 

 

 이스라엘이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지상전을 개시한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루 평균 100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그 공격의 목표라고 밝혔지만, 결코 이것이 남겨진 이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평화의 언어는 좀체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생각하며 좌절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을 쏘는 것 대신에, 언어를 교환하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잠식해오는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저항시인들의 작품을 꺼내 읽는다. 그야말로 고통을 재료로 글을 써내려간 이들이다. 팔레스타인의 시인 압드 안나시르 쌀리흐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무려 열다섯 차례나 체포되었다. 역시 팔레스타인의 시인인 칼릴 투마도 감옥 안에서 보낸 세월이 감옥 밖에서 산 시간보다 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때로는 시를 읊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낭만적 놀음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공격’을 외치고 있고, 이스라엘의 거리는 “아랍인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로 뒤덮이는 중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강철화살탄’을 동원하기 시작하면서 인명피해는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이 무기는 탱크에서 발사된 뒤 수천 개의 화살로 흩뿌려지는 대량살상무기다. 그뿐인가? 이스라엘군은 상수도 시설까지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서도 희생자가 나오지만, 이 모든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복수’라는 외침에 지워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자지구의 정신건강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에야드 엘 사라이 박사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경우 3중의 고통을 겪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강압적인 점령정책에서 비롯된 심리적 고통, 경제봉쇄에서 비롯된 경제적 고통, 일자리를 잃고 좌절감에 싸인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이라는 3중고”라고 밝힌다.

 

 

 하지만 내가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있다. 핏빛 속에서 장미의 붉은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이어지는 병역거부 선언이다.

 

 

 www.refusersolidarity.net에 접속하면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물론 이스라엘의 병역거부는 대부분, 병역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도 팔레스타인의 서안과 가자, 그리고 유대인 정착촌에서의 근무를 거부하는 형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인이 과거 강력한 군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잔인한 대량학살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젊은이들은 바로 그렇게 ‘명령에 따랐을 뿐인’ 나치 병사의 손에 유대인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외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의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 젊은이들을 조국의 ‘반역자’로 몰아붙이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그리고 당신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조국’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젊은이들. ‘자국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젊은이들.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감옥에 가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들. 상관의 명령이 아니라 각자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이들. 이런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전율이다.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고 살해를 살해로 돌려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 용감하게 ‘평화’를 외칠 줄 아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겹도록 기쁘다. 군사형무소에 갇혀 지내면서도, 변호사의 접견 권리까지 침해당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준다.

 

 

 팔레스타인 군사작전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이유로 제4 군사형무소에 갇혔던 다비드 하함 헤르손은 감옥에서의 편지를 통해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탱크를 능가하는 무기”라고 말하면서 “나의 투옥에 대해 생각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뭔가 달라진다”고 호소한다.

 


나는 이런 이들이 보내오는 메시지에 화답하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신념, 그 강렬함에 설득 당했다.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필사적으로 절망의 한 구석에서 희망의 물결을 찾는다. 이 몸짓은 절박하면서 무모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갖고 이스라엘의 지성에 호소하려고 한다. ‘살림’의 논리로 ‘죽음’에 대항하자고. 부디 이 전쟁을 함께 끝내자고. 핏빛 세상이 아니라 장밋빛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한반도와 이스라엘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연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꽤 많다. 우선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는 등, 이 전쟁을 지탱하고 있는 기업과 은행을 보이콧하는 아바즈의 서명운동에 동참하실 수 있다.

(https://secure.avaaz.org/kr/israel_palestine_this_is_how_it_ends_loc/?bZhxjdb&v=42677)

 

 

 ,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1인 시위에 참여하실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군비 확충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힘을 보태는 방법도 있다. (http://www.bdsmovement.net/stoparmingisrael)

 

 

 붙여, 앞서 언급한 www.refusersolidarity.net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미리 작성되어 있는 탄원서 양식도 있어서 이들을 위한 탄원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미미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쓴 글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에 어떤 방식으로건 책임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희망을 갖고 인내하는 것만이 삶을 지속해나가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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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다솜

세상 살림을 하고 싶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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