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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픈(-) 노동자의 비애

김벼리 / 청년칼럼 / 2015.01.18 58.140.189.40

   용돈 벌이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외진 곳이라 손님이 별로 없었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일 년 정도 일을 하면서 다양한 손님을 만났다. 불친절한 손님, 친절한 손님, 깎아 달라는 손님, 괜히 시비 걸고 욕하는 손님 등. 그 중에서도 나를 불쾌하게 하는 손님들을 대할 땐 늘 난감했다. 화를 내야 하나. 만약에 화를 내서 저 손님이 다신 안 온다면 우리 사장님은 손해를 입을 텐데. 아니다. 이 편의점이 내 소유도 아닌데 뭔 상관이랴. 저 손님이 안 온다고 해서 내 수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닌데……. 결국 나는 늘 꾹 참곤 했다. 마음이 약했던 것 보단, 수를 계산하며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손님들이 떠나곤 했다. 이렇게 고용자와 손님 사이에서 서비스 노동자들의 위치가 난감한 건 무엇 때문인가.

 

- <카트>와 삼각 구도

 

   “무릎 꿇고 사과하라 그래.” 영화 <카트>에 나오는 대사다. ‘더 마트계산원인 혜미(문정희 분)가 손님에게 규정에 따른 절차를 요구하자, 이에 자길 의심하는 거냐발끈하며 손님은 결국 눈앞에서 혜미를 무릎 꿇린다. 사실 이 영화가 서비스 노동을 다룬다고 할 순 없다. 이 영화는 소위 이랜드 사태를 재구성하여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서비스 노동이란 하나의 소재나 재료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서비스 노동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서비스 노동이 아니었다고 해도 영화의 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노동을 다루는 이 글에서 <카트>를 언급한 건 바로 저 씬 때문이다. 다시, 카트는 고발영화. 흔히 고발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들은 고발하는 대상이 명확하며, 그 대상에 대한 관객들의 감정특히, 분노를 여러 방식으로 자극한다. 고발영화는 지극히 전략적이고 정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트의 저 씬은 영화의 흐름에 있어 정점에 위치한고 할 수 있다. 아마 감독은 이 장면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씬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무릎 꿇는 씬은 삼각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혜미와 손님, 그리고 혜미의 상관이자 더 마트를 대표하는 최 과장(이승준 분). 엄밀히 말해 이들은 이 대 일의 대립 구도를 띤다. 혜미 대 손님과 최 과장. 이런 구도 하에서 혜미의 울분은 분산된다. 따라서 혜미의 감정선을 좇는 관객의 분노도 자연스레 분산된다. ‘고발영화라는 측면에서 이런 식의 흐름은 다분히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손님의 무릎 꿇라는 부당한 요구 이후 카메라는 가만히 혜미를 잡으며 그녀의 표정 변화에 관객을 몰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부단히 움직인다. 당황하며 머뭇거리는 혜미에 머무르지 않고 기어코 카메라를 움직여 최 과장의 매정한 표정을 잡은 뒤, 다시 혜미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여기서 삼각관계’, 즉 비효율적인 전략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취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이후 무릎을 꿇고 초점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하는 혜미의 억눌린 분노는 손님과 최 과장 둘 다를 향하는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한껏 달아오른 관객의 분노도 손님과 최 과장, 둘 다를 향해 분산된다. 결국 이 영화가 회사의 부당 해고를 고발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손님을 지우고 최 과장을 분노의 표적으로 설정했어야 효과적이었을 테다. 왜 굳이 감독은 이 삼각 구도를 고집했을까.

 

   위에서 <카트>서비스 노동을 다루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이 이 씬 만큼은 고발의 목적을 잠시 밀쳐두고 서비스 노동의 양상을 전면화 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삼각 구도는 비효율성을 감수할 만큼 서비스 노동의 중요한 특성일 테다. 저 씬의 비효율성은 이런 식의 접근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자세한 이유는 감독만이 알 테다. 여기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럼 이제부터 삼각 구도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 노동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해보자

 

- 삼각구도와 하이픈(-) 노동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이자 본질적인 특징인 자본의 자기증식 과정을 ‘M(Money)-C(Commodity)-M´’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자본은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팔아 화폐를 얻고, 그 화폐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닫힌 구조(C-M-C´)를 띠었다. 그러나 같은 순서에서 위치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도,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자본가들은 화폐로 상품(원자재 혹은 자본재)을 사고, 그것들을 결합해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팔아 더 많은 화폐를 얻는다.(M-C-M´) 이 구조에는 끝이 없다. 전자에서 C는 말하자면 대체 가능한 상품이지만, 후자에서 M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 누가 많은 돈을 거부하고 적은 돈을 원하겠는가. 많은 돈은 더 많은 돈을 부르고, 더 많은 돈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부른다. 이른바 자본의 자기증식이다. M은 끊임없이 , M´´, M´´´... 증식해나간다.

 

   앤드류 스미스에 따르면 서비스 노동자의 위치는 ‘M-C-M´’을 매개하는 지점에 있다. 그러니까 MC, CM 사이의 하이픈(-)이 바로 서비스 노동자의 위치다. 풀어 표현하면, 고객에게서 화폐를 받고 상품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화폐를 받아 주인(고용인)에게 전달하는 연결점에 서비스 노동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이픈, 즉 서비스 노동자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하나는 MC를 무리 없이 연결해주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MC의 연결을 차단하는 역할이다. 예컨대 아이스크림이 500원이라고 할 때, 손님이 500원을 기꺼이 지불한다면 서비스 노동자는 손님에게 상품을 마땅히 건네줘야(MC를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손님이 500원을 지불할 의사 없이 아이스크림을 원할 때 서비스 노동자는 500원에 못 미치는 화폐와 아이스크림의 교환(MC의 연결)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비스 노동자가 겪는 고충의 구조적 원인은 바로 이 이중적 역할에 있다.

 

   서비스 노동자는 분명히 예컨대, 가게의 주인이 아니다. 가게의 주인은 따로 있고 서비스 노동자는 말하자면 대리인일 뿐이다. CM 사이에 위치하는 서비스 노동자는 CM 사이의 틈만큼 고용인에게 의심을 받는다. C=M이 아니라 C-M인 이상. 고용인에게 서비스 노동자, 즉 하이픈은 불가피하지만 가능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중적인 대상이다. 손님과 서비스 노동자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가게에서 손님이 마주하는 건 대리인인 서비스 노동자뿐이며, 그들의 존재는 불쾌하다. 그건 위에서 살펴본 두 가지 역할 어느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환을 차단당한 손님의 불만은 부재하는 주인을 향하지 못하고 눈앞의 서비스 노동자에게 향한다. 그들은 결국 서비스 노동자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대리인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항의를 하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의외로, 교환이 성사된 손님에게도 서비스 노동자가 눈엣가시인 건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신성의 현현(顯現)’페티시즘혹은 루카치의 물화과는 반대로 객관적인 것이 주관적 특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의 현현하에서 돈으로 구마할 수 있는 상품은 돈을 가진 사람 바로 그 자체가 된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M=C=손님’. M자체가 바로 C가 되어야 하므로, 즉 화폐의 지급이 곧 상품의 구매를 수반해야 하므로 여기서 하이픈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그러므로 서비스 노동자의 존재는, 그로 인한 매개 과정은 손님을 불편하게 한다. 음식을 시킨 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며 짜증 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종합적으로 서비스 노동자는 손님이나 고용인에게 있어 불가피하지만 최대한 보이지 않아야 하는, 말하자면 필요악의 존재다.

 

   고용인, 서비스 노동자, 손님. 이 셋의 삼각 구도는 서비스 노동의 구조적인 틀을 이룬다. 이 삼각 구도에서 서비스 노동자는 고용인과 손님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존재를 정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비관적이지만, 이 삼각 구도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서비스 노동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고용자와 손님 사이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불안한 위치가 개선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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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좀 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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