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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민주주의; 대표성의 회복

박성환 / 청년칼럼 / 2015.01.06 61.74.172.87

결사민주주의; 대표성의 회

 

더연 4기 부편집장 박성환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하여’ 라는 표현을 남발한다. 누구나 ‘이것이 다수 국민의 뜻이다’라는 정당성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책과 정치적 의지를 달성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대다수의 국민이 진정 원하는 정책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표성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민의 권력을 대신해서 행사하는 대리인이다. 따라서 민의를 거스르는 법의 상정과 정책의 집행은 민주주의에 상충하는 것이다. 설령,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국민의 뜻과 반대되는 고도의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그 빈도는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새 정부가 행하는 여러 국가 정책(증세, 보건, 안전)이 과연 국민의 동의를 받고 행하는 정책인지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소수의 이익단체와 권력 계층 자신들만의 생각과 이익을 마치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책인 것 마냥 너무나 쉽게 다수를 참칭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이다. 사회 구성원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방대해졌기 때문에 과거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처럼 전 주민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는 더 이상 힘들다. 물론, 스위스의 일부 주에서 행해지는 ‘주민총회’(Landsgemeinde, 란쯔게마인데)처럼 예외가 있기는 하나 그러한 경우는 매우 극소수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국민을 대표할 소수의 대리인을 선출하여 그들에게 국가를 경영할 권리를 양도한다. 홉스나 루소와 같은 서구의 수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고안된 이러한 '사회계약설'(사회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상호가 동의하는 계약에 따라 국민이 대표자들, 혹은 군주에게 권력을 양도하였다.)은 대의제의 정당성을 공고히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의제의 사회계약론에서 ‘계약’이란 그러한 사실이 실제로 있었다기보다는 임의로 그러한 것이 있다고 가정을 한 선험적인 특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국가에 주어진 권력이 태초의 어느 시점에서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도 빠짐없이 동일한 공간에 모여 그것도 만장일치의 동의를 받았다는 설정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과거 어느 시점에 만들어진 사회계약설에 따라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공권력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먼 옛날에 모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전 인류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를 사사받았으니 우리는 모두 거기에 순종해야한다는 논리만큼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2014년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아무리 내 인생의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러한 ‘계약의 존재’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더러 난 실제로 거기에 나의 의지로 동의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을 대표하는 권력', 즉 대표성에 대한 정당성은 지배 계층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얼마든지 다수의 뜻, 다수의 의지로 둔갑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과거에 비해 정보 공개가 활발하다 못해 정보의 과잉 부유현상이 심해지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오늘날에 이르러 '만들어진 대표성'은 더욱 손쉽게 나타난다. 그리고 대표성의 정당성, 즉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대표성은 곧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귀결된다. 이러한 위기는 오늘날 국회의원들의 낮은 전문성으로 인해 직업관료집단에게 민생관련 정책입안을 사실상 위임하고 ‘국회는 그저 행정부가 만들어놓은 정책에 대한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는 '행정위임의 문제'와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않았음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표성의 왜곡으로 나타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답은 '결사민주주의'이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이 개별적인 이해관계와 이익을 대변해주는 소규모의 시민조직을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사단체의 성격이 지나치게 거대 담론을 논하거나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인도에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는 것을 막아 보행자의 권리를 증진시킨다든지, 의료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든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문제점에 대해 공감한다면 누구든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결사단체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상적이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적인 정책적 선호를 최대한 대변할 수 있는 데에는 바로 수많은 단위의 자발적 결사단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과연 협회나 연맹까지 만들어야 할 만큼 저것이 그렇게 중요할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국에는 다양한 성격의 협회가 존재한다. 미국사형폐지연맹, 미국골동품협회, 전국서커스팬협회, 미국탄산음료제조업자협회, 전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 미국총기협회, 미국애견협회, 여우사육자협회, 전국피클포장업자협회 등 미국의 다양한 성격의 결사단체는 의회, 사법, 행정, 언론, 정당과 대등한 정책 결정 요체로 기능하면서 엘리트주의의 모자란 대표성을 메우고 정당성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개개인들의 다양하고 세부적인 이해관계와 취향을 대변하는 전문적인 결사단체가 활성화 되어있지 않으니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관료집단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국회 다수당에 의해 국가 정책이 독단적으로 결정되고 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이를 ‘통보’받고 나으리들이 만들어놓은 정책에 대해 준수를 ‘강요’받을 뿐이다. 최근의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 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증세 정책통과 과정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흡연자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차주들로 구성된 결사단체가 좀 더 활성화되었더라면 국가 정책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결사단체들(예를 들어 금연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도 얼마든지 정책 형성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개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거나 이에 따른 수정과 보완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정책수립단계에 전혀 동참하지 못하는 반면, 국가에 의해 결정된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가 이미 상당히 발생한 후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이에 대해 질타하는 여론이 형성되는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책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계층을 대변하는 결사 단체의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소수 엘리트에 의한 정책결정은 별다른 저항이나 평가를 받지 않고 행해진다.

 

 이와는 반대로 정부와 국회는 강력한 결사단체와 연관된 정책에 관해서는 한 번 더 심사숙고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여타 국민 증세 정책이 별다른 저항 없이 통과된 반면, 종교인 과세 정책은 한국기독교총연맹과 대형교회와 같은 거대한 결사단체가 분명한 거부의사를 밝힘으로써 정책 결정이 제동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결사단체의 무분별한 난립과 특정 단체의 영향력 독점 현상 역시 소수 이익단체의 권력이 마치 다수 시민의 이익인것마냥 대표성이 왜곡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몇몇 영향력 있는 이익단체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의원과 관료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여 사회구성원 다수의 권리를 해치면서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유도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소해보이고 쓸데없어 보이는 활동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그러한 일상적인 성격의 결사단체 성립은 오히려 시민들로 하여금 멀게만 느껴지는 정책 결정 과정에 능동적인 참여를 고취시키고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정책이란 많이 배우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만들어서 그저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업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우리의 사는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당과 관료들 역시 독단적인 판단에 의한 ‘위로부터의 정책 하달’을 지양하고 어떤 국가 정책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 결사민주주의를 통해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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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환 / 부편집장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며 가슴으로 공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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