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신드롬인가? 박정희 시대의 종말인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5월 9일~10일 이틀에 걸쳐 실시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및 재지지 의향 조사’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다짜고짜 이런 조사를 왜 했냐고 따지는 사람부터 ‘박정희가 1위인 이런 조사결과를 왜 발표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에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 참고기사 : <여론조사> 전현직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나온다면? 노무현 47.4%, 이명박 16.1% 지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순 호감도 조사와 재지지 의향 조사 두 항목에서 모두 1위를 한 것을 두고 해석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신드롬’으로 해석하고,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고 해석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마음이겠으나 여론조사의 목적은 특정 시점의 결과를 보기 위함이 아니라 추세를 읽는데 있다. 따라서 지난 10여년간 이와 유사한 조사에서 어떤 결과들이 나왔었는지를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2008년까지 업적 평가든 호감도 조사든 박정희 압도적 1위

 

2001년 한국갤럽 등 3개 조사기관이 전국 성인남녀 4,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역사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항목에 대해 응답자의 21.1%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뽑았다. 그 다음이 세종대왕(19.8%), 이순신 장군(12.7%), 김구 선생(10.5%) 순이었다.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명 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5,000년 한민족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응답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2001년이라는 시점에 발생한 특별한 현상일까? 아니다. 2002년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일한 조사에서도 1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20.1%)이었다. 2위가 세종대왕(16%), 3위가 이순신 장군(15.3%), 4위가 김구 선생(7.9%)로 2001년 조사와 순위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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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박정희의 나라’라는 조사결과는 이후에도 쭉 이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2004년 5월 MBC가 드라마 ‘영웅시대’ 방영을 앞두고, 인터넷 홈페이지로 네티즌 35,000여명에게 ‘국내 분야별 영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치분야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이 49%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 1위였다.

 

2004년 6월에 한국갤럽이 창사 30주년 기념으로 실시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란 특별 기획 여론조사, ‘전·현직 대통령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항목에서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7.9%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첫 번째로 꼽았다. 2위는 김대중 전 대통령(14.3%), 3위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6.7%)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선두였다.

 

2008년 정부수립 60주년 기념으로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대통령’항목에서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73.4%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11.5%), 노무현 전 대통령(4.3%) 순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 연령대에서 1위였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지지하는 정당에 관계없이 1위였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85%, 민주당 지지층에서 54.1%, 민노당 지지층에서 58.7%, 진보신당 지지층에서 47.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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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박정희 압도적 1위 무너져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6월 1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38.1%)은 여전히 1위였다. 하지만 이전처럼 압도적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6.0%로 바짝 뒤를 쫓았다. 다음은 김대중 전 대통령(10.7%)이었다. 이 조사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그 내용이 ‘존경하는 인물’이든, 호감도 조사든, 업적 평가든 처음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합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앞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앞선 것이다. 이 조사결과에 대해 시사IN은 분석기사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 시대의 아이콘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의 상징으로 ‘박정희 대 김대중’ 대결 구도를 형성해왔다. 그런데 이런 ‘산업화 대 민주화’의 대결 구도가 깨지면서 양자 모두를 극복하려 했던 ‘노무현’이 등장한 것이다. 서거로 인한 추모 및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울분과 충격의 서거정국 여진을 감안한다면 차후 지지율이 조정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뿐일까? 한발 더 나가 보자. 지도자상에 대한 시대적 관점이 달라진 건 아닐까? 박정희-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산업화 패러다임이 붕괴된 것은 아닐까?’라고 보도했다.

 

 

일시적 현상 아닌 패러다임 변화 트렌드 확인
민주진보진영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과반 넘어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가 <리서치 뷰>에 의뢰해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는 , ‘노무현 대 박정희’ 구도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분명한 트렌드라는 것을 확인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의 합이 50%를 넘었다는 점이다. 민주진보진영 전직 대통령의 호감도 합이 5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① ‘전·현직 대통령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을 묻는 항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31.9%로 가까스로 1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3%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오차범위 내인 1.6%차로 좁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정희 맞수 자리를 내주기 이전의 지지율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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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재출마시 지지의향을 묻는 항목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57.5%), 노무현 전 대통령(47.4%), 김대중 전 대통령(39.3%) 순이었고,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다시 뽑겠다’는 의견이 16.1%, ‘다시 뽑지 않겠다’는 의견이 72.2%를 기록했다.

 

 

민주화 세력이 못한 일을 이명박이 해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박정희 향수’를 상품화했다. 경선 과정부터 이명박 후보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며 박정희 이미테이션에 열을 올렸고, 박근혜 후보는 피를 물려받은 자신이 박정희의 적자임을 내세웠다. 국민들은 본선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에 ‘하자 많은 후보’를 거리낌 없이 뽑았다. ‘박정희 향수’가 없었다면 ‘하자 많은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묻지마 투표가 가능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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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노무현재단과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노무현 대통령 서거2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에서 성경륭 한림대 사회과학연구원장(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은 여전히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나라’라며 참여정부가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패러다임을 바꿔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불균형발전전략(일부 지역에 자원 집중, 소수 재벌에게 자원 집중), 수출주도 전략, 성장위주 전략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박정희 모델이 ‘사회적 양극화, 지역불균형, 재벌지배체제’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김용익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원장(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수석)은 <비전2030의 지향과 내용>이라는 발제를 통해 ‘정부주도의 요소투입형 성장 모형, 불균형 성장모형, 낙수효과, 시혜·소비로서의 복지, 가족복지 의존’(박정희 모델)을 참여정부가 지양하려고 했던 것으로, ‘인적·사회적 자본 확충 및 혁신주도형 성장, 균형발전, 복지를 통한 인위적 재분배, 투자로서의 복지,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를 참여정부가 지향하려던 국정운영 방향이었다고 회고했다.

 

지금껏 박정희 신드롬을 해체하기 위한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적, 정책적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정책적 노력도 우리 경제,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박정희의 그늘을 걷어내지 못했고, ‘친일’, ‘독재’ 등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적 공세도 ‘박정희 향수’를 지우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박정희 신화’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박정희 모델의 재연과 박정희 시대의 재림을 내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은 ‘권위주의’는 보여줬지만 ‘성장’은 보여주지 못하였다. 국민은 ‘이명박의 한계’뿐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박정희 모델이 재연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시대의 도래

 

박정희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담론지형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우선 국정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경제성장’이라고 답변한 응답자의 비율이 2008년 2월에 32.8%, 2009년 2월에 26.6%, 2009년 6월에 19.3%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국민통합’이라는 응답은 6.3%→13.9%→28.3%로 상승하면서 1위로 뛰어올랐다. 양극화 해소, 민주주의, 복지, 평화, 통합 등 ‘사람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노무현 가치가 성장, 경쟁, 효율, 반공 등 박정희 모델의 핵심 가치를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노무현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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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11.05.18.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팀장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