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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영화 읽기 <모스트 바이어런트>

더연 / 문화살롱 / 2015.04.06

 

김봉석의 영화 읽기
<모스트 바이어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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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바이어런트 A Most Violent Year (2014)

   
개요  범죄, 느와르미국124분2015.04.02 개봉
감독  J.C. 챈더
출연  마오스카 아이삭(아벨 모랄레스), 제시카 차스테인(안나 모랄레스), ... 더보기
내용 
젊은 사업가 아벨과 아내인 안나는 오일 사업을 확장하나 강도사건으로 손해가 극심해지고, 검사는 범법행위로 기소한다. 대출을 약속한 은행도 이를 취소하는데… 남은 시간은 단 3일, 궁지에 몰린 아벨에게 마피아의 딸인 안나가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 과연 아벨은 자신의 신조대로 정당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

원문출처: 네이버영화

 

 
이 세계가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지옥이라고 답할 것이다. 완벽한 지옥은 아니고 연옥 정도.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어디나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지역은 좀 더 지옥에 가까울 테고.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는다. 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현실은 더욱 조악하게 흘러갈지라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다. 인간은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낼 수 있다는 신념이 흔들렸다. 민간인의 희생이 군인 이상으로 많았고, 서구 세계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 든 악몽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J.R.R. 톨킨은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의 판타지 <반지의 제왕>을 썼고,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절망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뇌하는 작품을 썼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건조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문체를 말하던 하드보일드는 이후 탐정소설의 한 경향을 의미하게 되었다. <붉은 수확>의 대실 해밋과 <빅 슬립>의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작가들의 소설.
 
하드보일드 소설의 탐정은 불륜이나 실종 같은 사소한 사건들을 처리하다가 거대한 벽에 부딪치게 된다. 자신이 아무리 힘을 써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견고한 시스템 혹은 체제. 하나의 사건을 해결할 수는 있지만 자신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이 하드보일드 소설에는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하드보일드의 탐정은 그냥 패배하지 않는다. 굴복하고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지키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긋고 절대로 쓰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탱한다. 그것이 유일한 자존심이다.
 
J.C. 챈더 감독의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면서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을 떠올렸다. 1981년, 장인에게서 석유회사를 인수한 아벨은 심각한 위협에 처한다. 석유를 운반하는 트럭이 6개월이 넘게 강도를 당하지만 속수무책이고, 2년간 회사를 조사하던 검사가 기소를 결정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며 석유탱크가 있는 부두의 땅을 인수하려 한다. 그러나 강도사건이 격화되면, 재판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대출이 중단되고 모든 것이 파국이다. 아벨은 성공을 원하지만, 장인처럼 갱스터가 되는 것은 절대로 거부한다. 폭력을 쓰지 않고, 어떤 불법적인 짓도 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원한다. 절대 선을 넘지 않고 위대한 사업가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딸의 생일에 가택 수색이 들어오고, 대출이 거부된다. 과연 아벨은 갱스터가 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추락하고 몰락할 것인가.
 
무엇인가를 선택한 순간 이미 미래는 결정된다고 아벨은 말한다. 그래서 선택을 하면 오로지 달려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실패가 가장 두렵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실패는 누군가의 위협에 못 이겨, 두려움에 사로잡혀 선을 넘어버리는 것이다. 절대로 선을 넘지 않고, 아벨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아간다. J.C. 챈더의 전작인 <마진 콜>과 <올 이즈 로스트>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었다.
 
아벨은 과연 타락한 것일까.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목적을 달성한 아벨은, 갱스터는 아니지만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자본가가 된 것일까?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고 나면 되묻게 된다. 과연 어디까지가 타락이고, 어디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인가. 각자에게 달린 선택이기는 하지만 궁금하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천국인가, 지옥인가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결국 당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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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네 21에서 영화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예술종합잡지인 브뤼트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웹툰 '미생'의 작가 윤태호와 함께 만화 전문 웹진인 에이코믹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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