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 (하네스 B. 모슬러 저)

더연 / 문화살롱 / 2015.03.30

사라진 지구당.jpg


2004년 지구당 폐지 과정을 심층 조사·분석한 <사라진 지구당, 공전하는 정당개혁>은 지구당 제도 폐지 사례를 통해 정치개혁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점을 낱낱이 보여준다. 책을 통해 확인한 지구당의 수난기는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가장 기초적 단위라 할 수 있는 정당의 지역조직을 법으로 금지하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1962년 정당법이 제정되었을 때 정당은 독재정권의 정당화와 국민의 통제·동원 등을 위해 활용되었다. 지구당은 비리, 권력악용 등 문제의 원천이 되었고,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 문제가 신·구주류 간, 제도권과 비제도권 간의 대치 문제로 전환되었다. 16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한 여야 386 국회의원은 기존 주류세력과 ‘낡은 정치’를 비판함으로써 신주류로 부상했다. 그들에게 지구당 폐지는 구주류의 권력 기반이자 기득권을 타파하는 작업이었다. 민주당 분열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여권 내 개혁 경쟁이 벌어지면서, 신당인 열린우리당도 지구당 폐지라는 극단적 개혁을 내세워 민주당을 압박했다. 2003년 ‘차떼기’ 사건 전후로 사회 전반에 강한 정치개혁 요구가 분출되었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나라당 역시 지구당 폐지라는 열차에 탑승했다.


저자는 지구당 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되고 나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사실과 1년 후 당원협의회를 허용하도록 정당법이 개정된 사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지구당제의 폐지는 정치제도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사고이자 ‘교각살우’라고 평가한다. 더 나은 민주주의적 해결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숙고가 생략된 채, 정치문제를 경영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다 금지주의에 빠진 ‘좋지 않은 선례’라는 것이다.


지구당 폐지를 주도했던 정치세력의 목표는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정치를 현대화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국민과 정치제도를 매개하는 연결고리의 제거였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는 배제되었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개혁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겼다. 지구당 폐지에 적극 관여했던 의원들조차 미국처럼 지구당이 다른 조직으로 대체될 줄 알았다거나 지구당 자체가 아니라 지구당을 두어야 한다는 법적 의무사항만 폐지되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은 개혁 주체들의 무책임과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정치 계급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한 이해의 문제라는 저자의 지적은 옳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근본적 수준의 민주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진단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KakaoTalk_20150330_161824978.jpg



하네스 B.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 박사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사회문화학·한국학 학·석사


좋은 글은 다른 이들과 나눠주세요

댓글 0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