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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영화 읽기 <데몰리션>

더연 / 문화살롱 / 2016.07.15

 

김봉석의 영화 읽기

<데몰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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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개요 드라마|미국|100분|2016.07.13 개봉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제이크 질렌할(데이비스), 나오미 왓츠(캐런), ... 더보기

내용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이비스는 점차 무너져간다...



원문출처: 네이버영화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도통 분간이 되지 않는다. 투자 분석가인 데이비스가 그렇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데이비스는 찰과상 정도지만 아내는 응급수술을 받다가 사망한다. 다음 날, 아침 데이비스는 출근을 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업무를 시작한다. 회사 동료들은 데이비스를 낯설게 쳐다본다. 너무 큰 사고나 사건이 닥치면 사람들은 그 일에서 도망치려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장하려 한다.


아내가 죽었다는 선고를 받은 후, 데이비스가 처음 한 일은 병원 자판기에서 초콜렛을 뽑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오지 않았다. 병원 직원에게 항의하지만 자판기 회사의 소유라며 무시당한다. 아내의 장례식을 마치고, 데이비스는 혼자 방에 들어가 편지를 쓴다. 자판기 회사에 보내는 항의 편지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세세하게 이야기한다. 다음 날, 데이비스는 또 편지를 쓴다. 돈을 돌려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의 <데몰리션>은 커다란 슬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한껏 슬퍼하고 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반대로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툭툭 털고 일어나자고. 그 모든 위로와 충고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틀린 말이기도 하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고, 그들이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도 다르다. 데이비스는 부수고, 해체하고,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모든 것을 다시 보는 길을 택한다. 장인이 말했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그 말이 문득 떠오른 데이비스는 실행에 옮긴다. 사고 직전 아내가 부탁했던, 물이 새는 냉장고를 분해한다 삐걱거리던 화장실의 문을 해체하고, 오류가 난 컴퓨터를 분해한다. 사람들은 데이비스를 더욱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은, 자판기 회사의 고객 담당 캐런이다. 캐런은 그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에게 전화를 걸고, 그를 만난다. 아들 크리스와 함께 사는 캐런은 마약중독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대마초로 대신한다. 크리스는 15살인데 12살처럼 보이고, 21살처럼 생각한다. 문장 곳곳에 ‘Fuck'을 넣어 말한다.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데이비스는 그들과 가까워진다. 아주 아주 가까워진다. 그리고 함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간다.


데이비스가 말한다. 과거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인다고. 길가에 쓰러진 나무, 차를 타고 가면 비쳐드는 햇살,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 같은 것들. 과거에는 피하고 외면하며 무감각해지려 했던 것들을 데이비스는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순다. 아내와의 결혼이 무엇인지 알고,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집을 해체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녀를 사랑했음을.


<데몰리션>은 일일이 말해주지 않는다. 데이비스가 부수고 해체하는 과정은 그저 미친놈의 기행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가 택할 수 있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데이비스는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걸어간다. 음악에 맞춰서, 음악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흔든다. 그런 자유로움이 원래의 데이비스였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데이비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보지 않았고, 서서히 자신을 잃어버렸다. 아내의 죽음이 그를 일깨웠다. 그래서 과거를 부수고, 해체하고, 하나씩 모두 들여다본다. 파괴만이 재생의 유일한 기회를 줄 수 있다.


<데몰리션>은 아름답다. 순간순간 데이비스가 느끼는 아내와의 추억, 데이비스가 해체의 순간에 빠져드는 모습, 캐론과 크리스와 교감하는 순간들 등등. 장 마크 발레는 자연스럽게 데이비스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배우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들이 마음껏 방황하게 만든다. 언젠가 큰 슬픔을 만난 적이 있다면, 지금 나의 세상이 온통 잿빛이고 불투명하다면 <데몰리션>은 하나의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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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김봉석

씨네 21에서 영화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예술종합잡지인 브뤼트와 만화 전문 웹진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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