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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저)

더연 / 문화살롱 / 201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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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민아 회원


책장을 되짚어보기를 몇 차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2005년 세상에 나온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자극을 받았고 2013년 개정판을 반가워하며 기꺼이 읽었는데, 두 권의 책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책을 찾지 못해 새 책을 사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는 어느 서평가의 글을 보며 비웃었던 자신을 반성하며 서점으로 향했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젠더 민주주의 아카데미 <레드스타킹을 신어라!>에서 첫 강의를 맡은 정희진 선생의 글을 꼭 소개하고 싶어서다.


책을 어디에 둔 것인지, 누구에게 준 것인지를 잊은 참담한 기억력이야 그렇다 치고, 두 번이나 읽은 책이 이리도 새로우니 또 한 번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반전도 있다. 평소 내가 말해온 성차별과 관련한 논증적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다수가 이 책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 책에서 정희진 선생은 여성주의가 양성평등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논쟁이나 글쓰기, 말하기에 관심이 있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길 권한다. 페미니즘은 지식의 형성 과정, 권력의 작동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는 학문이자 실천이기 때문이다. 여론 주도층 인사들이 정희진 선생의 강의를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반면, 전업주부, 폭력 피해여성, 저학력 생산직 노동자 등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침묵을 강요받아 온 사람들이 그녀의 강의가 쉽다고 평하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역설이다. 여성주의는 남성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모임에서 지인이 여행지를 소개하며, 그곳이 너무 좋다고 자랑을 이어가자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아요?”하고 물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함께 듣던 사람들, 비시각장애인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 지인은 “바람이 불어올 때 그곳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평소 여행지를 소개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풍광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풍광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닿을 수 없는 인식의 영역이다.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우리의 언어는 비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인터넷, 휴대전화가 우리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몸이 인식의 미디어가 된다는 마샬 맥루한의 주장을 인용해 보자. 페미니즘을 인식하기 위해선 여성이면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계급, 인종, 민족, 나이, 장애 여부, 성정체성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사회적 억압을 받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를 누구, 무엇과의 관계로부터 설명할 것인가, 그 범주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면서 기존의 억압적인 삶의 양식을 재생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이 던지는 화두다. 더 이상 지배적 시각인 남성의 관점으로부터 여성과 나를 정의하지 말고, 서구와의 관계로부터 우리를 정의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이 우리 자신을 나날이 새롭게 만드는 매력적인 참고문헌 중의 하나라는 정희진 선생의 생각이 담긴 이 책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목소리를 응원하는 당신에게도 매력적인 참고문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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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칼럼리스트. 저서로 『페미니즘의 도전』,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정희진처럼 읽기』,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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