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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영화 읽기 <극비수사>

더연 / 문화살롱 / 2015.07.27

 

김봉석의 영화 읽기
<극비수사>

 

극비수사_1.jpg


극비수사 (2015)

  
개요   범죄, 드라마|한국108분2015.06.18 개봉
감독   곽경택
출연   김윤석(공길용), 유해진(김중산), ... 더보기
내용 
1978년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  
사주로 유괴된 아이를 찾은 형사와 도사의 33일간의 이야기

원문출처: 네이버영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고 싶은 영화를 개봉 몇 개월 뒤에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흥행이 잘 되는 영화는 개봉관에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했고 그 다음에는 재개봉관, 재재개봉관으로 이어지면서 어딘가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멀티플렉스로 바뀌면서 아무리 잘 되는 영화도 석 달, 넉 달을 넘기기 힘들어졌다. 점점 좌석수가 적은 상영관으로, 아침과 심야에만 상영하고, 몇 개 안 남은 상영관도 변두리가 되어 뒤늦게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용이함이 생겨났다. 비디오대여점은 사라졌지만 VOD가 활성화된 것이다. 스크린으로 보지는 못해도, 아직 극장에 걸려 있을 때에도 IPTV 등을 통해서 개봉 영화를 볼 수 있다.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면 가격은 거의 동일하고 심지어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스크린으로 보는 맛과는 역시 다르다. 다만 극장에서 아쉽게 놓쳤거나 보기 힘들어진 영화를 거의 시간차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좋다. 시간이 돈 이상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더욱.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를 언론 시사에서 놓치고, 극장에서도 놓치고 VOD로 보게 되었다. 그래도 개봉한지 한 달 만이니 과거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빠르게 본 셈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작은 영화들은 엄청나게 빨리 극장에서 밀려난다. 입소문을 통해서 느리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곽경택은 2001년 <친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에 일조한 감독이다. 하지만 후속작인 <챔피언> <똥개> <태풍>에서 유오성, 정우성, 장동건 등의 최고 스타들을 앞세우고도 흥행에 실패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어느 새 과거의 감독이 되어버린 것 같은 곽경택이지만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정교한 액션 블록버스터에는 취약하지만, 낡았어도 순수하고 뜨거운 정서를 그려내는 데에는 탁월하다. <태풍>이 전자라면 <똥개>는 후자다. <친구>가 대중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그 시절의 따뜻한 정서를 진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경험의 힘이기도 하고. 데뷔작인 <억수탕>에서 보이듯 곽경택은 서민적인 기쁨과 슬픔, 일상의 해학과 고통을 잘 포착하는 감독이다. 그 덕에 지금 젊은 관객들에게 쉽게 호응을 받지는 못하는 것은 아쉽다.

 

<극비수사>의 시대 배경은 1978년이다. 돈을 노린 어린아이 유괴가 횡행했던 1970년대, 부산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실종된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유괴범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 경찰은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예단하며 수사를 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갔던 두 사람이 있었다. 가족의 부탁으로 사건을 맡게 된 공길용 형사는 아이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이 엄마를 만난 김중산 도사는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김중산의 말대로 15일 만에 유괴범에게서 전화가 온다. <극비수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당시 사건의 발표와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해결한 공길용과 김중산은 당시 발표에서 러나지도 않았다.

 

<극비수사>는 아이의 유괴를 둘러싼 범인과의 치밀한 공방전이 세련되게 펼쳐지는 영화는 아니다.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극비수사>의 중심은 공길용과 김중산의 관계다. 뒤늦게 투입된 공길용은 관할서 형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김중산은 오히려 용의자로 지목되어 형사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공길용과 김중산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젊은 여성의 얼굴에 칼자국을 낸 자를 공길용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김중산은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이익이나 명분 혹은 수다한 목적들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길용과 김중산은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애잔하고 답답해서 점점 영화 속으로 깊게 끌려들어간다.

 

<극비수사>는 잘 만들어진 영화다. 40여 년 전에 벌어진 유괴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며 소소한 액션 장면들도 잘 뽑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정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곽경택의 뛰어난 장점이다. 이런 영화들이 너무 빠르게 극장에서 내려가며 잊혀지는 것은 참 아쉽다. 영화판에서도 인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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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네 21에서 영화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예술종합잡지인 브뤼트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웹툰 '미생'의 작가 윤태호와 함께 만화 전문 웹진인 에이코믹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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