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일정인 인터뷰를 20여분간 진행했을까..비서실에서 초조하게 문을 노크한다. 남은 질문 몇 개가 있었으나 이미 다음 일정에 늦은 시각. 중간 중간 틈 날 때 소화하지 못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캠코더를 챙겨 다음 일정(독서토론회) 장소로 이동했다.
차 구청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부산에서 대학교수를 했고 시민단체 일을 했고 방송을 했다고 하니까 (노무현)대통령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들 하시는데, 제가 대통령님을 직접 만나고 악수를 한건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됐을 때가 처음”이라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또 “가장 마음을 갖고 있고, 관심을 두고 하려는 일은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일, 깨어있는 시민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구정의 모든 사업이 기획 단계부터 집행단계, 그리고 이걸 평가하는 단계까지 시민들이 골고루 배치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구민 중심 참여 자치’를 위한 1년간의 다양한 시도들을 소개했다.
구청장으로서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예산이 줄어들어 재정상황이 악화된게 제일 힘들다. 지금은 우산 씌워주는 일보다 비함께 맞는 일을 하고 있다.”며 예산부족으로 어려운 분들을 더 많이 도와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가슴아파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는 “이(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본인(오세훈 시장)이 시장직을 유지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주민투표의 절차상, 그리고 주민투표의 근본 취지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짧은 인터뷰를 통해 살짝 들여다본 차성수 구청장의 면면은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학자형 정치가였다. 차성수 구청장의 ‘구민우선 사람중심의 금천’을 향한 도전이 성공해 금천구가 서울 서남권의 중심지로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차성수 구청장은 금천구에서 태어났으며, 부산동아대 교수,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을 거쳐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선5기 금천구청장에 당선됐다.
★ 차성수 금천구청장 인터뷰 영상 ★
※ 인터뷰 전문은 질문순서에 상관없이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재구성했음을 밝혀둡니다. (편집자)
(질문)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친환경무상급식 문제, 주민투표 의제로 부적합..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
친환경무상급식관련 주민투표는 크게 두가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절차상의 서명명부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한계가, 이런 문제들이 있어서 그런 절차상의 하자를 안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성을 갖겠느냐 라고 하는 게 하나 있을 수 있구요,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연 친환경무상급식이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만한 사안이냐 라고 하는 것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냐라고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결국은 정부사업이라고 하는 것이 예산을 얼마나 집행하느냐 그리고 예산, 국민의 세금이라고 하는 걸 쓰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하자가 있으면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볼 순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민투표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거기에 들어가는 갈등이나 이런 과정들을 생각해 보면 주민투표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오히려 훨씬 더 사회적 비용을 더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친환경무상급식이 적절하게 조율되고 대화로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에서도 이미 무상보육을 전면화하고 있고 무상보육의 연장선상에서 무상급식이 국가가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제공해야 되는 책임과 의무기 때문에 이건 당연하게 논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상보육은 타당하고 무상급식은 부당하다라고 하는 건 이미 잘못된, 의제자체 설정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 주민투표 끝까지 가겠다면 그 결과에 시장직 걸어야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고 이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것이 선출된 공직자로써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 논란과 관련해서 처음에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조율하지 않고 그리고 끝까지 이 문제를 밀어붙여서 일년 만에 주민투표를 성사시켰는데 이 결과와 상관없이 본인이 시장직을 유지하겠다라고 하는 것은 주민투표의 절차상, 그리고 주민투표의 근본 취지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지난 1년간 단체장으로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는?
정말 부끄러운 얘긴데요, 정말 이걸 잘했다라고 내세울 만한 성과를 제가 얘기하기가 참 힘듭니다. 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장들이 고민들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건물을 만들거나 하드웨어를 바꾸거나 이런 일 같으면 이런 일이 눈에 딱 두드러져서 할 게 있는데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게 결국 사람을 바꾸는 일이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서 이만큼 성과가 났다라고 하긴 어렵구요 단지 새로운 시도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는 거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간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일, 깨어있는 시민을 조직화하는 일에 집중
제가 가장 마음을 갖고 있고 그리고 관심을 두고 하려고 했던 건 결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일, 두 번째는 깨어있는 시민을 조직화하는 일 이 두 가지가 사실은 서로 상승작용을 할 수 있는데요, 저는 국회의원보다 구청장이 바로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적합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구청장을 선택을 한 것이고 그 일을 지난 1년 동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결국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런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과정들을 쭉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통해서 시민들이 스스로의 주체성과 주임됨을 깨달아가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수있다라고 하는 걸 자각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저는 주민참여라고 하는 과정이 사실은 더욱더 깊이 있게 진행 되어야 되고 더욱더 폭넓게 진행되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정의 기획 단계부터 집행단계, 평가단계까지 시민들이 골고루 참여하는 방식 시도
예를 들면 참여위원회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그 제도적인 통로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정의 모든 사업이 기획 단계부터 집행단계, 그리고 이걸 평가하는 단계까지 시민들이 골고루 배치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건축이면 건축, 교육이면 교육, 복지면 복지, 각 시민들이 참여해서 공동의 거버넌스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기본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가능한한 시민들의 의사를 들을 수 있는 통로를 각 영역별로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 합니다. 주민참여단이라고 하는 별개의 조직을 만들어서 그 팀이 돌아가지는 않지만 교육이면 교육, 복지면 복지 그 다음에 다른 모든 사업들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들을 다 만들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의견을 반영하고 자기들 주장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다음에 집행단계에서도 시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마지막 평가단계에서도 시민배심원단이라고 하는 걸 한 30명 정도 만들어서 건축이나 토목과 같은 하드웨어부분은 전문기술자들로 또 퇴직공무원들로 그리고 또 시민명예감사관들은 일반시민이나 나름대로 전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을 같이 진행할 수 있게 그렇게 해서 마지막 평가모니터링까지 전체 순환을 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구요.
통장아카데미 통해 통장들을 ‘섬기는 리더’로, 복지도우미로
주민참여예산제야 뭐 다 같이 하는 거니까 모두가 해야 되니까 진행을 하는 거고 저는 기존에 있는 여러 가지 조직들이 있는데 이 조직들을 변화시키는 것도 구청장만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통장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구청의 말단기능, 뭐 이런 걸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통장아카데미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통장들을 다시 교육을 시키고 통장이 지역에서,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만은 섬기는 리더로 지역단위에서 리더로 커 갈 수 있도록 통장들을 키워주고 그리고 섬기는 리더로써 구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복지도우미로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역할을 주고, 이렇게 해서 기존에 있는 사람들도 변화시키고 또 기존에 이런 구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확대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구요 그 과정에서 이걸 뭐 폭을 넓히는 거죠.
시민 800명이 만든 시민오케스트라, 좋은 ‘참여’이벤트로 기억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성 행사를 하는데 작년에 축제 때 관객에 불과했던 구민들이 우리가 축제의 주체가 되자 해서 시민오케스트라라고 하는 것을 조직하고 집에서 혼자 하모니카 연습하고 바이올린 연습하던 사람들이 한 800여명이 모여서 두 달 전 부터 같이 곡도 고르고 연습도 주말에 한 두 번 하고 800명이 다 같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그런 참여라고 하는 걸 가능하면 신나고 즐겁게 의무나 부담이나 책임감 그걸 뛰어넘는 방식으로 참여를 끌어내는 과정이 저는 제일 의미 있었고 좋았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서 평생학습원을 만들고 평생교육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시키고 주민들이 직접 제안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 이런 것도 만들어가고 이런 과정들이 사람들을 바꿔나가는 과정이고 대통령님께서 마지막까지 이제 법과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되지않는다라고 하는 걸 가장 아쉬워하셨는데 그 문제를 문화와 사람들 의식과 생활을 끊임없이 개입하고 끊임없이 같이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그 역할 그게 바로 단체장, 특히 기초단체장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가지를 꼽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민들이 주체로써 자신들의 일에 대해서 또는 자신들의 사적인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을 공적인 쟁점으로 만들고 공적인 의제로 만들어서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그런 노력을 쭉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공유, 공론화, 공감 3공 과정이 중요
그 과정에서 제가 이제 3가지 정도를 3공이라고 통상 부르는데요. 첫째, 공유 해야된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려면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 주는 게 필요하구요. 두 번째는 공론화해야됩니다. 공론화를 한다는 건 공유된 정보의 바탕 위에서 각자의 주장과 판단을 우리가 토론하는 과정인데 정보를 공유하면 공론화시키는 대화와 토론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공론화과정을 거치면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고 공감을 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공감을 하게 되면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고 느끼고 있구요 그래서 정보를 공유하고 공유된 정보의 바탕위에서 토론할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서로가 가지고 있던 차이를 공감하고 느끼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만들어나가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질문) 단체장으로서 지난 1년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처음 시작할 때도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중앙정치 국회의원이나 중앙정부나 청와대에서 일을 하고 이런 거는요 아버지 같은 역할입니다. 큰 틀을 만들어 내는 게 그 쪽의 역할이면 단체장들 특히 기초단체장은 큰 틀이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에 집행단계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구석구석을 사실 보살펴 가면서 큰 틀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그리고 개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요와 필요에 맞게 제대로 작동을 할 수 있게 되는지 이런 것들을 배려해가면서 하는 것이 단체장일수 있는데요. 그래서 이게 아버지 같은 역할과 어머니 같은 역할로 정치가 좀 나누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로서 살림을 살아야 하는데 돈 없어 힘들고 마음 아파..지금은 우산 씌워주는 일보다 비 함께 맞는 일 하고 있어
단체장, 기초단체장은 특히 어머니 같은 역할이라고 하는 건데 살림을 살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정말 힘듭니다. 그러니까 돈으로 때울 수 있는 일도 돈으로 못 때우니까 몸으로 때우는 게 어머니들의 많은 역할인데 지난 1년 동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필요로 하는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이게 모자라는 거죠. 무상급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게 5학년 6학년까지 하는데 돈이 한 7-8억이 더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없어서 드릴수가 없는 거예요. 뭐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이게 법적조건은 안되지만 정말로 어려우신 분들을 도와드려야 되는데 저희가 그런 것들을 해드릴 수 있는 돈이 없어요. 어머니들이 애들을 가르칠 때 학원가라고 돈 주고 뭐 이렇게 해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게 많이 있구요, 그래서 작년 1년이 특히 예산상황이 올해까지 예산상황이 굉장히 안 좋고 대부분 구청이 감축을 해야 될 겁니다. 예산을 줄여서 해야 되는 경우, 이게 IMF때 말고 처음 있는 경우거든요. 재정상황이 악화된 게 제일 힘들고 그리고 제일 바쁘고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제일 많이 아프죠.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은 우산 씌워주는 일보다 비함께 맞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 이 어려운 상황을 잘 버텨나가고 있구요. 가능하면 시멘트에 들어가는 예산을 좀 줄여서라도 교육이나 복지 쪽에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을 그런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자 중심 행정’ 펴기 위한 혁신역량 강화 쉽지 않아
두 번째는 이제, 오랫동안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자기 지역 안에서 일하는 게 익숙해져있어요. 그래서 뭔가 더 열심히 봉사하고 주민들을 배려하고 구민우선이라고 하는 슬로건, 구민우선 사람중심의 슬로건을 갖고 가고 있는데 이게 국민들한테 무조건 잘해줘라 이런 뜻이 아니라 수요자 입장에서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수요자의 요구와 필요를 파악해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인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요자 중심의 행정을 펼쳐나가는 거, 이걸 하기 위한 우리 공직사회 내부의 직원들 내부의 혁신과정 이런 것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긴 한데 제 임기가 4년밖에 안되니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 구청장이 되기 전 이력에 대해 간단히 (노무현 대통령님과의 인연, 에피소드 중심으로)
부산에서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방송인으로 일하다 2002년 대선 캠프에 합류
전 이제, 금천구가 제 고향입니다. 이 고향에서 2살에 이사를 와서 30살까지 살다가 32살에 제가 부산동아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부산에서 20년 교수생활을 하는 동안에 시민단체 활동을 쭉 해 왔었구요, 진보적인 학술단체를 또 같이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에 있는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됐고, 2002년에 대선 때 대통령 지지율이 한창 떨어지던 시점에 제가 학교에 안식년을 내고 서울에 올라와서 비공식적인 선거캠프에 합류를 했구요, 6개월 동안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와드렸었습니다. 저는 정말 그때는 도와 드려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시 학교로 복귀를 했었습니다.
2004년 대통령 탄핵 보면서 공개적인 정치활동의 길로 들어서
2003년에 학교로 복귀를 해서 교수생활을 계속 하고 있었고 대통령께서 가장 원하셨던 균형발전을 위해서 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했었구요, 부산에서는 제가 안식년을 내기 전부터 방송활동을 했었습니다. TV토론 시사진행자를 쭉 했었는데 2003년 9월에 학교복귀를 하면서 다시 부산에 psb 지금 knn이라고 하는 프로에 시사프로토론프로그램을 진행을 쭉 했었습니다. 하면서 2004년 총선이 지역 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시점이라고 생각을 했고 총선 준비를 지역에 있는 몇 몇 분들과 함께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탄핵이 되면서 제가 시사토론 특히 이제 선거방송을 해야 되는데 제 양심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상황에서 시사토론을 더 이상 중립적 입장에서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회사 측에 얘기하고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바로 총선캠프에 합류를 해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정치활동 일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제 정치라고 하는 것에 공식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됐고 그 이후에 2006년 6월에 다시 지방선거를 치루고 나서 대통령 지지율이 한창 떨어질 때 청와대 들어와서 일을 해보라는 부탁을 받았고 청와대 들어가서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일을 시작을 했구요, 그리고 그 다음에 시민사회수석을 마치고 다시 복귀했습니다. 마친 다음에 총선출마를 위해서 2008년 2월 달에 청와대를 나와서 부산에서 출마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출마도 못하고 다시 학교에 복귀를 했구요. 그러다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여러 가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방선거 때가 되었는데 이게 아무것도 안하고 넘어가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서울이 참 어렵다, 민주당이 당선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당신 해 볼만 하니까 올라와봐라 그래서 지역(금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구청장이 됐구요.
비서관 임명장 받을 때, 대통령과 처음 악수..대통령 뜻 풀기위해 정치해
많은 사람들이 제가 부산에서 대학교수를 했고 시민단체 일을 했고 방송을 했다고 하니까 대통령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 믿고 있구요. 그런데 저는 문재인 당시 변호사님이죠, 그 다음에, 부산에서 대통령님하고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은 종종만나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본 적은 있지만 정말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대통령님을 단 한 번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님을 직접 만나고 악수를 한건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됐을 때가 처음이었다는 걸 이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저는 큰 은혜를 입었죠. 사실은, 전혀 사적인 인연이 없던 사람, 가장 측근인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으로, 참모로 인정해주고 그리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 드리구요, 꼭 그렇게 제가 정치를 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대통령께서 안돌아가셨으면 제가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바람에 한이 되서 어쨌든 이 문제를, 대통령 뜻을 풀기위해서 정치에 할 수 없이 뛰어든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지금, 초보운전사처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회원여러분, 건강 잘 챙기십시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회원여러분들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더좋은 민주주의, 더나은 민주주의가 우리 일상 생활속에 우리 몸속에 자리잡고 돌아가신 우리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 이땅에서 잘 실천되는걸 볼 수 있도록 건강 잘 챙기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길, 독서에서 찾아
- 구청장과 함께하는 독서토론회, 두 번째 이야기 -
두 번째 일정인 <구청장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회>는『금천 4대 비전』중 <미래에 투자하는 교육도시>를 위한 사업의 하나로 차성수 구청장이 제안한 사업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진보의 미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을 구정의 핵심원리로 삼고 있는 차구청장은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구청장과 함께하는 독서 토론회> 두 번째인 이날 토론회에는 평소 독서토론모임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금나래 독서모임’ 회원 15명이 참여했다. 회원 대부분은 초·중등 자녀를 둔 엄마들이었다. 구청장이 행사장에 입장하고 뒤따라 구청 홍보팀 카메라 담당 직원과 캠코더를 든 필자가 들어서자 ‘그냥 구청장님만 모시고 독서토론 하는 줄 알았는데, 무슨 기자회견 하는 것 같다. 카메라가 두 대나’라며 에둘러 불편함을 표현했다. 차 구청장이 ‘나는 매일 이렇게 삽니다,’라며 재치 있게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독서토론회 두번쨰의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장편소설 <연을 쫒는 아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연을 쫓는 아이』
주인공 아미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성장통과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굴절된 우정, 비밀과 배반, 양심의 가책과 보상이 얽힌 한 편의 드라마가 아프가니스탄의 격동의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토론이 시작되자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금새 사라졌다. 토론은 크게 ‘논제별 자유 토론’과 ‘찬반토론’ 두 가지로 기획되었는데, 논제별 자유 토론에만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논제별 찬반토론을 정리하고 찬반토론으로 들어가자 토론 열기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토론이 모두 끝나고 간단한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12시. 가산디지털단지 기업인 오찬간담회가 12시니깐 눈앞이 캄캄하다. 다음 일정을 시작할 시간인데 이제 출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1호선 지중화해 가산디지털단지를 서울 산업메카로 키우자
- 가산디지털단지 입주 기업인 오찬 간담회 -
12시 20분,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금천구 기업지원센터에 도착했다. 기업인들과 G-Vally 녹색산업도시추진위원회 인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어 숨 돌릴 틈 없이 오찬을 겸한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기업인들이 요구사항들을 이야기하고 구청장이 답변한다. 참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도로 문제, 교통신호 체계 문제, 소기업에 대한 마케팅 지원 문제, 각종 미팅 및 행사 공간문제, 국가유공자 의무고용문제 등등. 구청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 자리에서 답변하고, 유관기관과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협의 후 알려주기로 약속한다. 구청장은 답변 과정에서 ‘디지털단지’에 대한 본인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본인이 구청장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면서 ‘1호선(수원선) 지중화’ 이야기를 한다.
가산디지털 단지는 1·2·3 단지로 돼 있는데, 이 중 1단지는 구로구에, 2·3단지는 금천구에 속한다. 지하철 1호선(수원선)이 2·3단지를 동서로 분할하고 있는데,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독산역까지 약 2km 구간에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수출의 다리’ 한 곳 뿐이어서 출퇴근 시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다고 한다. 1호선 철길 서쪽에 자리 잡은 2단지는 철로를 따라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상태라 고가도로나 지하도로를 낼 곳이 없다고 한다. 차 구청장은 교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울에서 입지조건이 가장 뛰어난 가산디지털단지가 산업단지로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의 확실한 방법은 지하철 1호선의 지중화’라고 강조했다. 차 구청장은 ‘1호선 지중화’를 ‘내가 구청장이 된 이유 중 하나’라며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든 야든 모든 후보들이 이 문제를 공약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차 구청장의 뜨거운 호소에 기업인들이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면서 1시간 30분에 걸친 간담회가 마무리되었다. (차 구청장은 현재 기업체·시민단체와 함께 G-Vally 녹색산업도시추진위원회를 만들어 ‘1호선 지중화’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간기업들이 (자기들 힘으로) 알아서 여기까지 개발해 온 거 아니겠어요? 공공?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너희가 뭘 했는데 뒤늦게 와서 이러니’하면 참 할 말이 없어요. 근데 민간이 할 수 있는 걸로 이제 데드라인까지 왔다는 얘기입니다. 더 이상 민간들이 투자한다고 해서 여기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발전을 하겠어요.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이걸 한번 뒤집지 않으면요, 한번 뒤집어서 도약의 단계를 만들지 않으면 디지털단지는 다시 80년대 구로공단처럼 떨어집니다. 대책이 없어요. 그거 구청장이 해결해라, 구청장이 어떻게 하죠? 구청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하죠 제가. 누가 해결할 수 있느냐면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서울시장도 못합니다. 왜? 철도시설공단이 (서울)시장 말 안 듣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은 대전에 있거든요. 서울시하고 아무관계 없습니다. 안된다고 하면 끝입니다. 이건 정부부처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면 못하는 일입니다. 서울시장이 반대해도 (정부는) 할 수 있지만 정부가 반대하면 서울시장은 절대 못 하는 게 이 사업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년이 디지털단지 10년 승부가 걸린 시기다. 그만큼 목숨 걸고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근데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디지털단지가 덮여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1호선-수원선을) 콘크리트 박스로 덮어줄게, 연결만 해줄게 이렇게 나올 수도 있어요. 어쨌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덮어야 된다. 최소한 그게 원칙 아니겠어요. 그렇습니다. 그걸 뭐 지하로 덮든 위로 덮든 덮어야 된다. 이게 기본원칙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일하는 10만 가까운 직원들이요 놀러갈 데가 없다, 점심시간에 쉴 데가 없다, 갈 데가 없다 하는데 그 녹지가 만들어지면 서울 어디보다도 좋은 공간이 확보가 될 거에요. 이게(1호선-수원선) 지하에 묻는 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땅의 지형이 바뀌는 겁니다. 제가 금천구청장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저거 덮기 위해서, 저걸 덮어야 제가 공직생활을 한 기본적인 소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저 혼자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녹색산업도시추진위원회도 하는 거고, 그리고 기업인들 그리고 여기 일하는 근로자들이 같이 서명도 해줘야 되는 겁니다. (후략)
홈스테이에서 제일 중요한건 재미있게 노는거죠?!
- 자매도시(고흥·횡성) 홈스테이 어린이 방문단 환영식 -
가산디지털단지 기업인 간담회를 마치고 화장실 들릴 틈도 없이 구청으로 향한다. 2시, 구청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여름방학 홈스테이 Together Happy Camp'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구청 12층 대강당에 도착하니 80여명의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의자에 앉아있다. 1박2일간 진행되는 캠프에는 자매도시인 전남 고흥군과 강원도 횡성군 어린이 각각 22명과 금천구 어린이 40명이 참여한다. 개회와 국민의례에 이어 ’어린이 선서‘가 이어진다. 캠프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지켜야 하는 내용인데, 참 많다.
구청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한다. “지켜야 할 게 엄청 많은데, 제일 중요한 게 뭐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뭐라 뭐라 한다. 구청장은 “재미있게 노는 게 제일 중요하죠?!”라며 아이들 마음을 헤아린다. 짧은 환영사가 끝나고 기념품 증정, 기념촬영까지 환영식이 끝나는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지도와 나침반이 준비된 구청장
- 동행취재를 마치며 -
홈스테이 어린이 환영식이 끝나고 다음 일정인 ‘금천 비전 2020’ 중간보고대회까지 40분의 시간이 남았다. 이날 처음으로 잠깐 쉴 수 있는 휴식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구청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비서실장이 보고 문서들을 들고 들어왔다. 보고가 길어졌다. 오전에 못한 2개의 질문에 대해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자꾸 흘러간다. 45분에 비서실장이 보고를 끝냈고, 그때로부터 10분간 남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3시 보고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공개 회의라 관계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회의였는데, 특별한 배려로 배석할 수 있었다. 필자가 동행하는 마지막 일정이었다. 30분간 용역기관의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한 이날의 동행취재가 모두 끝났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의 하루를 동행취재 하다 보니, 자치단체장의 하루가 전쟁의 연속이라는걸 알겠다. 구정업무 처리, 회의 주재, 주민과의 대화와 소통, 민원인들과의 만남, 갈등 조정, 행사 참석 등등 정말 숨 돌릴 틈도 없는 일정의 연속이다. 구정 철학과 노선이 분명하지 않으면 일에 파묻혀 목표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되고 나서 구상하겠다? 그러면 일 못합니다. 구상하다 끝납니다. 준비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터뷰와 동행취재를 마치며 ‘차성수 구청장은 김병준 실장이 이야기하는 준비된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에겐 ‘지도와 나침반’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천의 역사가 차 구청장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길 기대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