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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영화 읽기 <동경 표류일기>

더연 / 문화살롱 / 2015.06.29

 

김봉석의 영화 읽기
<동경 표류일기>

 

동경표류일기_포스터.jpg



동경표류일기 (2011)

  
개요  애니메이션, 드라마|싱가포르96분2015.07.02 개봉
감독  에릭 쿠
내용 
성인들을 위한 만화라 불리는 ‘극화’의 창시자인 타츠미 요시히로의 생애와 작품을 그린 영화


원문출처: 네이버영화

 


한국에서 만화의 주류는 이미 웹툰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포탈에서 무료 웹툰을 제공하면서 많은 독자가 생겼고, 스마트폰을 통해 만화를 즐기기에 더욱 좋은 환경이다. 레진코믹스, 탑툰 등 만화를 제공하는 플랫폼도 10개가 훌쩍 넘어간다. 후발주자인 플랫폼에서 주력하는 것은 ‘성인만화’다. 성인만화라면 흔히 야한 만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성인만화라고 반드시 야하고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말초적인 자극만을 위한 성인 만화도 존재하지만 곰씹어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의 사정’을 그린 성인만화도 있다. 아이들이 보아도 아직은 이해하기 힘든 혹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말이다.

 

7월 2일 개봉하는 <동경표류일기>는 일본 극화의 창시자인 타츠미 요시히로의 일대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타츠미 요시히로는 아이들을 위한 만화가 대세였을 때, 어른이 빠져들 수 있는 거칠고 사실적인 만화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타츠미는 서구의 하드보일드 소설에 영향을 받은 심각하고 냉혹한 정조와 영화의 촬영과 편집 기법을 활용한 형식을 차용하여 만화를 그렸다. 타츠미는 1957년 말 만화잡지 <가>(街)에 타츠미가 발표한 <유령택시>의 표지에 처음 ‘극화’라고 표기했다. <고르고 13>의 사이토 다카오 등과 함께 ‘극화공방’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타츠미 요시히로와 사이토 다카오 등이 그린 극화는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이 즐기는 만화를 넘어 어른에게도 공감과 감동을 주는 극화는 영화, 소설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예술로서의 만화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타츠미 요시히로는 <철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 등 명작을 연이어 내며 일본만화의 신으로 군림했던 테즈카 오사무를 존경했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동경표류일기>는 만화가로 성장하며 극화에 투신하는 타츠미의 여정과 그의 대표작들이 함께 담겨 있다.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터진 현장에서 충격적인 사진을 찍은 남자가 있다. 벽에 검은 그림자로 남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착한 아들. 벽은 허물어졌지만 그가 찍은 사진은 반전과 평화의 상징으로 찬사를 받으며 동상으로 세워지고 평화 캠페인의 상징이 된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다정한 모자의 한순간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사악한 마음이 드러난 추악한 장면이었다. 단순한 고발이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의 단면이다. 21세기에도 여전한, 선과 악이 뒤틀린 채 교접하고 있는 현실.

 

살아남기 위해 양공주가 된 여인에게 아버지는 돈을 구걸한다. 술에 취한 그녀는 아버지를 유혹한다. 반강제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제 끝이야, 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스스로를 짐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타츠미 요시히로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바닥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늘 지켜봤다. 그의 오락은 만화와 영화였다. 허름한 극장에서 한 번 들어가면 3편의 영화를 보고 나왔다.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동화가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지켜봤던 비참한 세계의 맨얼굴과 법칙이었다.

 

타츠미가 발표했던 만화 <극화표류>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동경표류일기>는 타츠미의 일생을 쫓아간다. 왜 만화를 그리게 되었고, 어쩌다가 극화로 빠져들게 되었는지. 아동용 만화를 그리다가 슬럼프에 빠진 타츠미에게 성인만화 잡지의 편집자가 찾아온다. 당신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편집자가 말한다. 그 순간 타츠미는 화장실 벽에 그려진 낙서를 떠올린다. 가장 노골적이고 천박하게 그려진 그림과 이야기들. 인간의 마음 가장 아래에 침잠해 있는 가장 생생한 이야기들. 타츠미가 그리고 싶은 것은 꿈과 희망이 아니었다. 아니 꿈과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처박혀 있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먼저 낱낱이 헤쳐 봐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극화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가 늘 발을 딛고 서 있었던 현실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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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봉석
씨네 21에서 영화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예술종합잡지인 브뤼트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웹툰 '미생'의 작가 윤태호와 함께 만화 전문 웹진인 에이코믹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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